군기창은 조선 말기 기기국(機器局) 등을 개편한 것이다. 군부대신의 관할 아래 각 병과(兵科)에서 필요로 하는 군기와 탄약의 제조 및 수리를 담당하였다. 설치 당시의 책임자는 제리(提理)라고 하였으나 뒤에는 관리(管理)·창장(廠長) 등으로 불렸다.
그 해 9월에는 육군이 필요로 하는 병기·탄약·기구재료의 제조·수리, 해군 수요의 화약제조, 또한 제혁(製革)·제계(製械) 및 군용혁구(軍用革具)와 피복제조를 위하여 서울 안에 다음과 같은 몇 개의 제조소를 두었는데, ① 총포제조소 : 소장(포병참령 혹은 正尉―이하 같음.), 기사(技師) 1, 기수(技手) 4, ② 탄환제조소 : 소장, 기사 1, 기수 4, ③ 화약제조소 : 소장, 기사 1, 기수 8, ④ 제혁소 : 소장, 기사 1, 기수 4명 등이었다.
1905년 3월에는 기구가 축소되어 총포탄환제조소와 화약제조소의 두 제조소만 두었으며, 기사도 8명에서 2명으로, 기수도 31명에서 6명으로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실제 어떻게 가동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규모는 보잘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