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창

  • 역사
  • 제도
  • 대한제국기
1904년 7월에 설치된 군기의 제조와 수리 등을 관장하던 관서.
이칭
  • 이칭기기국(機器局)
제도/관청
  • 설치 시기1904년 7월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차문섭 (단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0일
서울 기기국 번사창 후측면 미디어 정보

서울 기기국 번사창 후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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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04년 7월에 설치된 군기의 제조와 수리 등을 관장하던 관서.

내용

군기창은 조선 말기 기기국(機器局) 등을 개편한 것이다. 군부대신의 관할 아래 각 병과(兵科)에서 필요로 하는 군기와 탄약의 제조 및 수리를 담당하였다. 설치 당시의 책임자는 제리(提理)라고 하였으나 뒤에는 관리(管理) · 창장(廠長) 등으로 불렸다.

그 해 9월에는 육군이 필요로 하는 병기 · 탄약 · 기구재료의 제조 · 수리, 해군 수요의 화약제조, 또한 제혁(製革) · 제계(製械) 및 군용혁구(軍用革具)와 피복제조를 위하여 서울 안에 다음과 같은 몇 개의 제조소를 두었는데, ① 총포제조소 : 소장(포병참령 혹은 正尉―이하 같음.), 기사(技師) 1, 기수(技手) 4, ② 탄환제조소 : 소장, 기사 1, 기수 4, ③ 화약제조소 : 소장, 기사 1, 기수 8, ④ 제혁소 : 소장, 기사 1, 기수 4명 등이었다.

1905년 3월에는 기구가 축소되어 총포탄환제조소와 화약제조소의 두 제조소만 두었으며, 기사도 8명에서 2명으로, 기수도 31명에서 6명으로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실제 어떻게 가동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규모는 보잘것이 없었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한말근대법령자료집(韓末近代法令資料集)』 3(송병기 외, 국회도서관,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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