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희릉참봉, 종묘서봉사, 순안현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23년 인조반정을 계기로 벼슬길에 나아가 익찬(翊贊) · 사어(司禦)를 거쳐 청풍군수(淸風郡守)를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익찬으로서 뒤늦게 강화도로 가서 봉림대군(鳳林大君) · 인평대군(麟坪大君) 등을 배종, 호위하였다. 이듬해 강화성이 함락되자 적에게 포로가 되어 항복을 강요당하였다.
“내 목은 끊을 수 있으나 너희들 앞에 무릎은 꿇을 수 없다.” 하여 끝내 순절하였다. 1657년(효종 8) 좌승지에 추증되고, 뒤에 고향인 강화에 충신정문(忠臣旌門)이 세워졌다. 1811년(순조 11)에 다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강화의 충렬사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저서로는 『혜국지(惠局志)』가 있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강화지(江華志)』
- 『경산집(經山集)』(정원용(鄭元容))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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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시호 추증 : 순조실록14권, 1811년(순조 11) 6월 19일. "증 좌의정 임광 등에게 시호를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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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혜국지 : 惠局志(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7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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