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빙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희릉참봉, 종묘서봉사, 순안현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백상(伯尙)
  • 서호(西湖)
  • 시호충렬(忠烈)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인조반정|병자호란
  • 본관진주(晉州)
  • 사망 연도1637년(인조 1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희릉참봉|종묘서봉사|순안현령
  • 출생 연도1569년(선조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차문섭 (단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5월 22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희릉참봉, 종묘서봉사, 순안현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상(伯尙).

생애 및 활동사항

1603년 성균관에 입학했다가 학행으로 천거되어 희릉참봉(禧陵參奉) · 종묘서봉사(宗廟署奉事) · 순안현령(順安縣令)을 지냈다. 광해군 때 여러번 내외 관직에 보직되었으나 국정이 문란함을 보고 나아가지 않았다.

1623년 인조반정을 계기로 벼슬길에 나아가 익찬(翊贊) · 사어(司禦)를 거쳐 청풍군수(淸風郡守)를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익찬으로서 뒤늦게 강화도로 가서 봉림대군(鳳林大君) · 인평대군(麟坪大君) 등을 배종, 호위하였다. 이듬해 강화성이 함락되자 적에게 포로가 되어 항복을 강요당하였다.

“내 목은 끊을 수 있으나 너희들 앞에 무릎은 꿇을 수 없다.” 하여 끝내 순절하였다. 1657년(효종 8) 좌승지에 추증되고, 뒤에 고향인 강화에 충신정문(忠臣旌門)이 세워졌다. 1811년(순조 11)에 다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강화의 충렬사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저서로는 『혜국지(惠局志)』가 있다.

참고문헌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강화지(江華志)』

  • - 『경산집(經山集)』(정원용(鄭元容))

주석

  • 주1

    : 시호 추증 : 순조실록14권, 1811년(순조 11) 6월 19일. "증 좌의정 임광 등에게 시호를 내리다"

  • 주2

    : 혜국지 : 惠局志(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736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