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신식군대로서 훈련대가 조직될 때 거기에 편입되지 못한 중앙의 남은 구식 군대를 중심으로 12대의 신설대(新設隊)가 조직되었다.
그 중 8대를 근대적인 공병으로 편제하였는데, 각 대대장을 비롯한 장교 및 하사관 약 140명과 3,200여명의 병졸이 있었고, 각 대대에는 새로 설치된 군물수송을 담당하는 치중병(輜重兵)이 100명씩 분속되었다.
1895년 5월 왕권호위의 시위대(侍衛隊)가 편제되면서 공병 2개 대대가 흡수되었고, 나머지 6개 대대는 수도방어중앙군인 친위대에 흡수, 친위연대의 제3·4·5대대로 편성되어 공병대는 사실상 폐지되었다.
그러나 1900년 친위대 안에 공병 1개 중대가 설치되어 명맥이 유지되었으며, 공병중대는 3개 소대로 나누어졌고, 정위(正尉)인 중대장을 비롯, 장교 18명에 상등·일등·이등병과 나팔수 등 157명의 병졸로 편제되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제가 군대감축을 이유로 1905년 친위대를 폐지하자, 공병은 독립된 1개 중대로 남아 있다가 1907년 일제의 군대강제해산으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