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건물. 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사적비에 의하면, 월리사는 1657년(효종 8) 원학대사(元學大師)가 이곳에 있던 신흥사를 옮겨 지은 것이라 하며, 이 절의 막새(처마끝을 잇는 기와)에서 ‘雍正庚戌(옹정경술)’의 명기가 발견되어 1730년(영조 6)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에 소장된 유물 중 연대가 뚜렷한 것은 두개의 탱화로서 하나는 1838년(헌종 4), 하나는 1897년에 그려진 것이다. 자연석의 기단 위에 자연석의 주초석을 썼으며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는 평주(平柱)보다 굵고 높다.
전면 주간(柱間)에는 井자문을 달았으며 두공(枓栱)은 조밀하게 배치되고 살미 끝은 날카롭게 휘어졌다. 처마는 겹처마로 전면 두 귀에 찰주(擦柱)를 세워 추녀부분을 받쳐 팔작지붕 건물의 통식을 따르고 있다. 기둥 위에는 다포계의 전형적인 평방(平枋)을 놓아 두공을 받고 있다.
두공의 배치는 등간격으로 일정하며 어간(御間)에 2구, 협간(夾間)에 1구씩 정연하게 배치하였다. 기와는 암수 막새를 정연하게 배치하였고, 막새의 모양으로 보아 몇 차례의 기와공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사찰 입구에는 1825년(순조 25)에 건립된 금장비(禁葬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