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출신. 부모를 따라 어렸을 때 만주로 건너가 통화(通化)에서 소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발생하자 중동선(中東線) 일대에서 동지를 규합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항일무장단체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헌병으로 입대하여 군자금 모금활동중 하얼빈의 일본총영사 구니요시[國吉精保]와 영사관 경찰서의 형사부장이 하얼빈과 창춘[長春] 일대에서 한국교민을 탄압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지 10여명을 규합하여 건국청년모험단(建國靑年冒險團)을 결성하고 계획을 추진하던 중 일본경찰에게 발각되었다.
1924년 4월 일본경찰에게 숙소를 포위당한 채 치열한 전투를 전개, 일본영사를 사살하고 10여명의 일본군을 쓰러뜨렸으나, 15시간의 전투 끝에 김만수(金萬秀)·유기동(柳基東)과 함께 전사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