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주(水州: 지금의 경기도 수원). 자는 여악(汝岳). 아버지는 중서시랑 최자성(崔滋盛)이고, 어머니는 좌사낭중(左司郎中) 이자례(李資禮)의 딸이다.
문음으로 호부주사동정(戶部主事同正)에 임명되었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특히 『주역』·노장학(老莊學)을 좋아하였다. 1121년(예종 16) 여택재생(麗澤齋生)이 되었으며 행실이 뛰어나 그 재장(齋長)에 뽑혔다. 1124년(인종 2) 과거에 급제하여 1126년 보문각교감(寶文閣校勘)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내시성(內侍省)에서 수년간 봉직하였다.
인종의 명으로 사부문적(四部文籍)을 검열하였을 때, 대신의 아들이며 도량이 중후하다 하여 왕의 총애를 받았다. 그 뒤 왕명의 출납을 맡았으며, 권지합문지후(權知閤門祗候)·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비서소감 지병부사(秘書少監知兵部事)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