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윤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대한제국기 청하, 청송, 영천, 의성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
이칭
  • 농고(農膏)
  • 성집(成執), 성집(聖執)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16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67년(고종 4)
  • 출생지경상북도 흥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성수
  • 최종수정 2023년 04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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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청하, 청송, 영천, 의성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

개설

일명 세한(世翰). 자는 성집(成執, 聖執), 호는 농고(農膏). 경상북도 흥해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농업과 교사생활을 하였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사건에 반대하여 1896년 의병 400여명을 규합, 안동의병장 김도화(金道和)의 의진에 들어가 아장(亞將)이 되어 좌익장으로 활약하다 해산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재거, 영천의병장 정용기(鄭鏞基)와 합세하여 도찰사(都察使) 정환직(鄭換直)과 활약하였다. 1908년 정환직 사망 후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청하 · 청송 · 영천 · 의성 등지에서 항전하였으나 밀정의 밀고로 붙잡혀 대구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단식투쟁 끝에 순사(殉死)하였다. 아들 최산두(崔山斗) 역시 옥중에서 순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자료집』2·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1971)

  •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 『영남출신독립운동약전』1(윤보현, 광복선열모회, 1961)

  • - 「대구지방법원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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