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평장사(平章事) 최유청(崔惟淸)의 증손으로, 좌복야(左僕射) 최종자(崔宗梓)의 아들이다.
고종 때 과거에 급제, 1258년(고종 45) 추밀원사로 당시의 집정자인 최의(崔竩)를 제거하려는 김준(金俊) 등의 모의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아들인 견룡행수(牽龍行首) 최문본(崔文本)이 중랑장(中郎將) 이주(李柱) 등과 함께 이 모의를 최의에게 밀고하였다. 최의가 제거된 뒤에 앞서의 밀고가 발각되어 김준과 유경(柳璥)이 최문본을 죽이려 하였으나 왕이 이를 반대하고 귀양보냈다.
이에 대하여 원망하자 김준 등이 탄핵하여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그 뒤 장군 이주인(李柱仁)의 청으로 풀려나와 1260년 추밀원사(樞密院使)에 복직되고 수사공좌복야(守司空左僕射)를 역임하였다.
1262년 판공부사(判工部事), 이듬해 수태부 중서시랑평장사(守太傅中書侍郎平章事)에 올랐다. 시호는 문신(文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