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사천 출신.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시 3·1운동에 참가하였으며,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항일민족운동에 진력하였다.
1941년 독립운동자금 조달을 위하여 동향인 부호(富豪) 정재기(鄭在淇)에게 독립운동자금 5,000원을 의뢰하여 귀향하는 소녀편에 밀서를 송부하였다. 그러나 밀고에 의해 일본경찰주재소에 발각되어 1942년 2월에 잡혔다.
경상남도경찰부로 압송되어 같은 해 6월 9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45년 2월 8일 대전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