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중서령(中書令) 최충(崔冲)의 아들이다.
1030년(현종 21) 과거에 급제하여 7품으로 한림원에 들어갔다. 그 뒤 1047년(문종 1) 어사잡단(御史雜端)을 거쳐 1052년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역임했다.
1055년 지중추원사로 공부시랑 이득로(李得路)와 조상회장사(弔喪會葬使)가 되어 거란 흥종(興宗)의 장례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그 뒤, 1061년 판상서예부사(判尙書禮部事)를 거쳐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어 추충찬화강정수제공신(推忠贊化康靖綏濟功臣)의 호를 받았으며 판상서이부사(判尙書吏部事)·개부의동삼사 수태사 상주국(開府儀同三司守太師上柱國)을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이 되었다.
대를 이은 유종(儒宗)으로 학문이 깊고 사리에 밝았으며 여러 차례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다. 수태위 중서령(守太尉中書令)에 추증되었으며, 문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화(文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