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공진(拱辰). 최수준(崔秀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언방(崔彦邦)이고, 아버지는 최완(崔山+宛)이며, 어머니는 노식(盧植)의 딸이다.
1601년(선조 34) 생원시에 합격한 뒤 1603년(선조 36) 식년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다. 선조대에는 예조좌랑·병조좌랑을 역임하였으며, 『선조실록』을 편찬하는 편수관이 되었다.
1616년(광해군 8)에는 서장관으로서 중국과의 외교문제를 잘 해결하였다 하여 진주사(陳奏使) 민형남(閔馨男), 부사 허균 등과 함께 전답 10결(結)과 노비 2구를 하사받았다.
1611년(광해군 3)에는 경기도사로서 서경덕(徐敬德)의 치제관(致祭官)을 맡았다. 그 뒤 사헌부장령·승정원승지·수원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나 인조반정 후 이이첨(李爾瞻)의 일당으로 폐모론에 앞장섰다 하여 탄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