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8년(고종 15) 시비서감 좌간의대부(試秘書監左諫議大夫)가 되고, 1231년 몽고의 살리타[撤禮塔]가 침입하자 후군지병마사(後軍知兵馬使)로서 감찰어사 민희(閔曦)와 함께 화의를 청하였다.
강화가 성립되자 구주성에 파견되어 박서(朴犀)를 출항(出降)하게 하였다. 이듬해 지서경유수가 되었으나 서경순무사(西京巡撫使)인 대장군 민희가 사록(司錄) 최자온(崔滋溫)과 함께 다루가치(達魯花赤)를 죽이려다가 서경인의 반란으로 억류되자 저도(楮島)로 피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