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급제,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가 되었다. 1118년(예종 13) 급사중(給事中)으로 도(道)를 분담하여 군사를 선발하였고, 1121년 동북면병마사를 역임하였다.
1127년(인종 5) 동지추밀원사·참지정사(參知政事), 이듬해 검교사공 판공부사(檢校司空判工部事)·이부상서를 역관하였다. 1129년 상서좌복야 참지정사(尙書左僕射參知政事), 이듬해 판상서예부사(判尙書禮部事), 1131년 검교사공 중서시랑 판병부사(檢校司空中書侍郎判兵部事)가 되었다.
이듬해 평장사(平章事)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동지공거(同知貢擧)인 이부시랑 임존(林存)과 함께 과거를 주관하였으나, 부제(賦題)를 잘못 내었다는 법사(法司)의 탄핵을 받아 파면되었다.
이어 중서시랑평장사로 복직되고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가 되었으나 이듬해 치사하였다. 관리로 치적이 있었으나 이자겸(李資謙)의 난 때 이자겸의 집에서 일을 보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두고 비난하였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