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흥해(興海: 지금의 경상북도 영일)의 공생(貢生: 지방에서 선발되어 중앙에서 보이는 과거에 응시자격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권신 최충헌(崔忠獻)의 노비 동화(桐花)를 아내로 삼고 최충헌의 집에 기거하면서 대정(隊正)으로부터 승진하여 대장군이 되었다.
1217년(고종 4) 거란군의 침입 때 제주(堤州: 지금의 충청북도 제천)에서 최원세(崔元世)·김취려(金就礪) 휘하의 우군장(右軍將)으로 출전하여 적군을 크게 쳐부수어 북으로 패주하게 하였다.
1219년 최충헌이 병이 나자 상장군 지윤심(池允深), 장군 유송절(柳松節) 등과 더불어 최충헌의 막내아들 최향(崔珦)을 최충헌의 후계자로 세우기 위하여 맏아들 최우(崔瑀)를 제거하려다 발각되어 섬에 유배 도중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