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혁주

  • 종교·철학
  • 인물
  • 대한제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귀국하여 육군 준장을 역임하고 은성교회를 설립한 목사·군인·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77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5년
  • 출생지평안북도 선천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석만 (서울대학교, 종교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귀국하여 육군 준장을 역임하고 은성교회를 설립한 목사·군인·독립운동가.

내용

평안북도 선천 출신. 어려서 만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으며 1923년부터 만주 화흥학교(化興學校) 교사로 있으면서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1924년 항일무장단체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참여하였고 1927년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뒤 개신교에 입교하여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귀국하였으며, 1935년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8월 평북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1937년 장로회 총회에서 만주선교를 결의하였을 때 선교사로 임명되어 길림성(吉林省) 쌍양현(雙陽縣)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하여, 남만주지역 선교에 커다란 성과를 올렸다.

광복 후 귀국하여 1948년 육군사관학교 특별 7기로 임관되어, 1960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할 때까지 감찰활동 및 군종업무 지원활동을 하였다. 예편 후 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장을 역임하고 은성교회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신앙활동을 하였다.

참고문헌

  • - 『평안북도지(平安北道誌)』(평안북도지편찬위원회, 1973)

  • - 『한국독립사(韓國獨立史) 하』(김승학편, 독립문화사,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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