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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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조선시대 함경도병마절도사, 충청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수부(秀夫)
  • 시호충원(忠元)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이몽학의 난|임진왜란|칠천량해전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597년(선조 3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충청도수군절도사
  • 출생 연도1546년(명종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동길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최호 장군 유지 미디어 정보

최호 장군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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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함경도병마절도사, 충청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수부(秀夫). 아버지는 벽동군수(碧潼郡守) 최한정(崔漢禎)이며, 어머니는 광주김씨(光州金氏)로 군수 김계옥(金繼玉)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고, 1576년(선조 9) 무과중시에 장원하였다. 여러 관직을 거쳐 1594년에 함경도병마절도사가 되었는데 야인들의 감파보(甘坡堡) 침입을 막지 못한 데 대한 견책을 받았다.

1596년 충청도수군절도사로 이몽학(李夢鶴)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는 홍가신(洪可臣)과 함께 주장(主將)이 되어 홍산(鴻山)·임천(林川) 등지에서 난적을 소탕하여 공을 세웠다.

이듬해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칠천량해전에서 원균(元均)과 함께 패사하였다. 1604년 이몽학의 난 평정에 세운 공로로 청난공신(淸難功臣) 2등에 추록되고, 1615년(광해군 7) 찬집청(撰集廳)의 주청으로 임난공신록에도 추록되었다. 시호는 충원(忠元)이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천해정속고(天海亭續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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