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 ()

단청
단청
건축
개념
채색 재료를 사용해 건축의 부재와 벽에 각종 문양을 채색하는 건축 채화(建築彩畫) 미술.
이칭
이칭
단확(丹雘), 단록(丹綠), 진채(眞彩), 당채(唐彩), 오채(五彩), 건축채화, 건축채색, 단칠(丹漆)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단청은 건축 부재에 각종 문양을 채색하는 건축 미술을 말한다. 예부터 동북아 지역에서 발달한 목조건축은 내후성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특히 주 건축재로 사용된 소나무는 단단하고 잘 썩지 않지만, 표면이 거칠고 건조 후 갈램이 크다. 이에 고대인들은 목조건축의 내후성 강화를 위해 부재 표면에 채료(彩料)를 칠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곧 원시 단청의 출발이다. 건축 부재에 칠을 하는 작업에도 인간의 미의식이 발휘됐다. 시대 발달과 변천에 따라 권위·종교·기복·내세의 각종 상징 문양이 채색됐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날 단청이 파생된 것이다.

정의
채색 재료를 사용해 건축의 부재와 벽에 각종 문양을 채색하는 건축 채화(建築彩畫) 미술.
단청의 목적

목조건축의 단청은 목재의 내구성 강화가 첫째 목적이다. 나아가 왕권과 같은 권력의 상징이나 종교의 엄숙한 장엄을 위하여 단청을 채색했다. 또한 특수 목적으로 건립된 각종 기념비적 건축물의 경우 그 성격에 적합한 특별한 문채(文彩)를 장식하기도 했다. 건축물에 단청하는 다양한 목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부재 보호 : 비바람이나 기후 변화에 따른 풍해 · 부식 · 건습 등으로부터 목부재를 보호하여 건축의 내구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나 가칠 단청이 있다.

② 종교적 장엄 : 불교도교 등 종교의 엄숙한 장엄이나 신성한 상징 문양의 채색으로 의식(儀式)의 존귀함을 표방하는 사원 건축 단청을 말한다.

③ 권위적 장식 : 왕조 시대의 왕권과 같은 절대 권력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주로 궁궐 건축 단청이 해당된다.

④ 기념비적 장식 : 특수 목적으로 건립된 건축물의 기념비적 특성을 표방하거나 기념하기 위하여 채색한 특별한 단청 양식을 말한다.

⑤ 조악성 은폐 : 목재의 표면에 나타난 각종 옹이나 흠집 등을 감추고 외관의 미려함을 위하여 도채하는 칠이나 가칠 단청을 말한다.

고대 문헌에 기록된 단청의 역사

단청의 역사는 고대로부터 전하는 다양한 문헌 사료를 통하여 파악할 수 있다. 단청에 대한 고대 우리나라의 문헌 사료는 『삼국사기』 · 『삼국유사』가 대표적이다. 또한 중국의 『여씨춘추』 · 『예기』 · 『회남자』 · 『문선』 및 일본의 『일본서기』 등에도 고대 단청의 추이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전한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단청’이란 용어에 대한 최초 기록은 중국 전한시대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 권20, 「태족훈(泰族訓)」의 다음과 같은 기록이다. “…수화목금토(水火金木土)의 곡물[穀]은 그 종류가 다르나 모두 쓰임[任]이 있고, 자[規矩]와 저울[權衡]과 먹줄[準繩]도 그 형태가 다르나 각기 쓰임이 있고, 단청(丹靑)과 아교(膠)와 칠(漆)이 모두 다르게 사용되는 것은, 각기 적소에 제 물건이 마땅히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단청에 대한 가장 이른 한국의 기사는 『삼국사기』의 솔거와 관련된 내용이다.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 때 화가였던 솔거가 황룡사 벽에 노송(老松)을 그렸는데, 새들이 이를 바라보고 날아들다가 벽에 부딪혀 떨어지곤 했다. 세월이 흘러 색깔이 바래자 단청(丹靑)으로 덧칠을 했는데, 그 후로 새들이 다시는 날아들지 않았다는 기록이다.

▪ 『삼국사기』 「옥사조」에는 골품의 신분에 따라 5등급의 건축 규모와 단청을 제한하는 내용이 기록되었다. 이를 통하여 신라의 건축 단청에 대한 다양한 양식을 가늠할 수 있다.

『고려도경』에는 고려 궁궐 건축 단청에 대한 다양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이를 통해 당시 고려 궁궐 단청의 추이를 살필 수 있다. 그 가운데 “왕이 거처하는 궁궐의 구조는 둥근 기둥에 모난 두공(頭工)으로 되었고, 날아갈 듯 연이은 용마루에 울긋불긋 단청으로 꾸며졌다.”라는 내용은 당시 고려 궁궐의 단청 채색이 화려함을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다.

『고려사절요』에는 “… 때에 국가가 태평한 지 이미 오래되어 경도(개경)의 호수가 10만에 이르고, 단청한 좋은 집들이 즐비하였으며…”라는 기사가 전한다. 이 내용은 고려시대에 단청이 일반 가옥에까지 크게 유행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다.

국가 단청을 수행한 관청 및 장인

조선시대 단청 주무 관청

조선시대 궁궐 건축의 영선(營繕)과 단청을 주관한 관청은 선공감이다. 고려시대부터 설치된 선공감은 조선시대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선공감 소속으로 도채장(塗彩匠) 20인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도채장은 채색을 칠하는 장인으로 궁궐의 단청과 각종 기물의 채색을 맡아 수행했다.

조선 궁궐의 대규모 단청 공사에는 도채장 외에도 도화서 소속의 화원, 지방의 화원, 불교 사찰의 승려 화원 등이 두루 참여했다. 특히 조선시대 그림으로 명성을 떨쳤던 도화서 출신의 많은 화원들이 궁궐 단청에 동원된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불교 사찰 승려 화원들의 참여는 국가 장인의 규모를 능가했다. 이같이 조선 중기 이후 한양 궁궐의 각종 단청 공사와 화성 축성 단청 공사에는 다양한 계층과 부류의 화원들이 두루 참여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궁궐 단청을 이끈 도화서 화원

조선시대 궁궐 · 종묘 · 산릉 등의 대규모 영건 사업 시에는 영건도감이 설치되었다. 영건도감에 부역하는 장인들에는 관장(官匠)과 사장(私匠)이 총동원되었다. 관장으로는 한성부의 장적에 등록된 경공장(京工匠) 중에서 선공감 소속의 목수 · 석장 · 도채장 · 석회장 · 아교장 · 도화서 화원 · 와서(瓦書)의 와장(瓦匠) 등 공사에 필요한 모든 장인들이 차출됐다. 연산군 재위 시대부터는 관장보다 사장(私匠)의 활동이 점차 활성화됐다. 사장은 국가의 각종 영건 사업 때마다 별도 녹봉을 받고 일을 수행했다.

궁궐 전각의 영건도감에서 부역한 화원들의 가장 큰 임무는 건축 단청이었다. 조선시대 창덕궁 영건 시 단청에 참여한 장인들로서 화원 · 화사 · 외방 화원 · 외방 화사 · 화승 등이 기록되어 있다. 외방 화원은 한성 이외 지방의 화원을 말하며, 화승은 사찰의 승려 화원을 가리킨다. 18세기 이후에는 선공감과 도화서 소속의 화원보다 외방 화원과 승려 화원의 부역 비중이 점차 높아졌다. 1804년의 창덕궁 인정전 영건도감에 참여한 도화서 화원은 신한평 · 김득신을 비롯하여 총 30명이었다. 그러나 외방 화원은 엄치욱을 포함하여 총 57명이나 되었다. 1830년 화재로 소실된 대조전 · 징광루 · 권심각 · 희정당을 1833-1834년(순조 33-34)에 재건한 기록인 『창덕궁영건도감의궤』에서도 도화서 화원은 19명, 외방 화사는 32명이 부역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성 궁궐의 각종 영건도감 단청 공사에는 화업(畫業)이 확실하거나, 명성이 높았던 도화서 출신의 화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을 살펴보면 이덕익 · 김명국 · 한시각 · 신한평 · 김득신 · 장한종 · 박유성 · 이인문 · 김양신 · 엄치욱 · 이재관 · 장준량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불세출의 화가들로서 궁궐 단청을 이끈 화원들이다.

불교 사찰 단청장 전승 활동

조선시대 단청장의 두 부류 중 하나는 사찰의 승려 화원 계통이다. 대본산과 같은 큰 절에는 수십 명 이상 화승(畵僧) 집단이 도제식 교육으로 양성됐다. 승려 화원들은 단청뿐만 아니라 불화 · 벽화 · 공예 · 조각 등 불사를 도맡아 수행했다. 그중 불화장은 최상의 경지로 우대받았으며, 단청장은 상대적으로 낮은 품계를 적용받았다. 불화 제작에는 고도로 숙련된 묘화의 기예가 요구되는 반면 단청은 어느 정도 필선 훈련만을 거치면 곧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궁궐의 대규모 단청 사업에는 도화서의 화원이나 선공감의 도채공보다 오히려 많은 불교 승려 화원들이 참여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1647년(인조 25)에 중건된 창경궁 저승전(儲承殿)의 단청은 당시 도화서 화원으로 명성이 높았던 김명국의 책임하에 무려 66명의 화승(畵僧)이 참여한 내용이 『저승전의궤』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1796년에 완성된 화성 축성의 단청 사업에는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된 46명의 참여 화원 가운데 화승이 40명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이 국가적 대업과 같은 대규모 단청 공사에 승려 화원들의 신앙적 힘과 헌신적인 기예가 큰 몫을 했음이 기록을 통하여 확인된다.

오늘날 파악되고 있는 승려 화원의 계보는 조선 후기 영조대왕 재위(1724~1776) 시 도화서 화원으로 활약하였던 상겸(尙謙) 화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후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의겸(義謙) · 유성(裕聲) · 수백(秀伯) · 청담(靑潭) · 금호(錦湖) · 대우(大愚) · 석옹(石翁) · 완호(玩虎) · 보응(普應) · 예운(藝云)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승려 화사들이 사찰 단청의 법통을 이었다. 그 뒤를 이어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금용(金蓉) · 월주(月洲) 등이 활약했고, 금세기 초까지 만봉(萬奉) · 석정(石鼎) 등의 금어(金魚)가 승려 화원의 맥을 계승했다.

한국 단청의 양식 분류

한국의 단청 양식은 문양이 채색되는 부재의 범위와 문양의 종류에 따라 체계적인 분류가 가능하다. 단청 양식에 대한 분류는 창방 · 평방 · 도리 · 대량 등 단청의 범위가 큰 부재의 채색을 기준으로 구분된다. 단청이 채색되는 건축의 횡가재는 창방과 대들보가 기준의 핵심이 되는 부재다. 특히 길이가 가장 긴 어간(御間) 창방의 단청 채색을 기준으로 삼는다. 따라서 창방의 문채(文彩)가 단청 양식의 종류를 가름하는 기준의 핵심이다. 창방에 채색되는 단청 문양의 장식 범위와 명칭은 아래와 같다.

한국 전통 단청 양식은 문양이 없는 가칠 단청 양식을 비롯하여 부재의 모든 면에 문양을 채색하는 극채색(極彩色)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17세기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단청 양식의 종류를 5등급, 8종으로 구분할 수 있다.

1등급: 금단청, 갖은금단청

금단청은 최고 등급의 단청 양식이다. 금단청 가운데 문양의 밀도를 더욱 치밀하게 장식한 극채색을 갖은금단청 양식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명칭에 비단 ‘금(錦)’자를 붙인 이유는 머리초, 별화, 금무늬를 비단에 수놓듯 화려한 채색으로 빼곡히 장식하기 때문이다.

금단청의 머리초는 병머리초, 장구머리초, 겹장구머리초 등의 치밀하게 구성된 도안이 적용되어 극채색의 화려한 조화를 나타낸다. 부재의 중심부에는 각종 금무늬와 별화를 장식한다. 또한 모든 문양의 황색 바탕은 금박으로 도금하여 찬란한 광채의 극대화 효과가 발휘된다. 이렇게 최고 등급의 단청 양식은 불상을 봉안한 불교 사찰의 대불전에 적용된다.

2등급: 금모로단청, 별화모로단청, 선화모로단청

금모로단청은 횡가재의 양단에 머리초를 배치하고 중심부에 금무늬를 조화롭게 장식한 수법을 말한다. 별화모로단청은 횡가재 양단에 머리초를 장식하고, 중심부에 별화를 배치한 방식이다. 선화모로단청은 횡가재 양단에 머리초를 배치하고, 중심부에 선화(線畵)를 장식한 양식이다. 선화는 문양초를 사용하지 않고, 단순한 색상을 이용하여 달필로 그린 채색법을 말한다. 이 양식들은 금단청보다 문양 도안의 밀도가 약하지만 부재의 여백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극채색의 효과를 보여 준다. 이 양식은 사찰의 불 · 보살전과 조선 궁궐 주요 건축의 내부에 주로 장식되었다.

3등급: 모로단청

횡가재의 양단에 머리초를 장식하고 중심부는 가칠만을 채색하는 양식을 말한다. 이 양식은 사찰의 불 · 보살전을 제외한 부속 건축 단청에 적용되었다. 또한 조선 궁궐 내 거의 모든 건축의 외부에 채색된 단청 양식이다. 모로단청이라 하더라도 머리초 도안의 밀도는 건축의 위계에 따라 다르다. 궁궐의 대전과 같은 중심 건축의 머리초는 도안의 장식성이 다분한 머리초가 채색되었다. 그러나 궁궐의 부속 전각이나 회랑, 사찰의 요사 등에는 간소하게 구성된 머리초가 주류를 이룬다. 또한 이 양식은 누각, 향교, 서원, 사당, 정자 등 일반적인 건축의 단청에 두루 적용되었다.

4등급: 긋기단청

횡가재에 가칠 후 문양 채색을 배제하고, 먹선과 분선 긋기만을 도채하는 방식이다. 각 부재에 상응하는 바탕색을 칠하고 건조한 후 부재의 형태에 따라 먹선과 분선을 밀접하게 복선으로 긋는다. 긋기단청이라 해도 한두 종의 색을 더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부연, 서까래, 출목 등의 마구리에는 매화점, 연화문, 태평화 등의 간소한 문양을 채색하기도 한다. 이 양식은 권역의 하위 등급 건축 단청에 적용된다.

5등급: 가칠단청

가칠단청은 부재의 내구성을 주목적으로 하는 가장 낮은 등급의 단청 양식이다. 이 양식은 선이나 각종의 문양을 전혀 채색하지 않고, 2~3종의 색으로만 2회 이상 칠하여 마무리한다. 이 단청은 특정 권역에서 품계가 가장 낮은 건축이나 일반 주택 등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예외로 최고 품계의 전각에도 가칠단청을 시공한 사례가 있다. 종묘 정전이나 문묘 대성전 등의 전각은 건축의 위계와 규모 면에서 최고 품계의 건축이다. 이들 건축은 각각 엄숙과 검약을 상징하는 건축이기 때문에 문양 장식을 일체 배제하고 제한된 색만을 사용하여 가칠단청으로 시공된 것이다.

단청에 사용된 전통 안료

안료란 물이나 유기 용제에 녹지 않으며 고유 색깔을 가진 미세한 분말을 말한다. 안료는 불용성으로 물 · 전색제 · 교착제 등으로 개어 물감으로 사용한다. 안료는 무기 안료와 유기 안료로 구분되는데, 전통 채색에는 대부분 무기 안료가 사용됐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고구려 벽화 고분, 고려시대 고려 불화, 조선시대 궁궐 단청과 채색화 등 대표적인 채색 문화 유산을 통해 예부터 다양한 안료의 채색이 사용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문헌 사료를 통하여 역사적으로 채색화나 단청에 사용된 전통 안료의 파악이 가능하다.

조선 궁궐 단청에 사용된 전통 안료

조선시대 단청에 사용된 안료의 종류와 명칭을 파악할 수 있는 문헌 사료는 『영건도감의궤(營建都監儀軌)』다. 조선시대에는 궁궐과 능원 등 국가적인 영건 사업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때마다 영건도감이 설치되어 공사를 관장했다. 공사가 끝나면 모든 관련 문서를 정리, 편집하여 종합 보고서인 의궤를 편찬했는데 그것이 곧 『영건도감의궤』이다. 조선시대 궁궐 단청의 전말을 기록한 영건 의궤에 기록된 전통 안료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 적색 계열: 반주홍(번주홍), 당주홍, 왜주홍, 주토, 석간주, 황단, 편연지, 주홍, 장단

• 녹색 계열: 뇌록, 하엽, 당하엽, 향하엽, 석록, 삼록, 대록, 양록

• 청색 계열: 석청, 청화, 삼청, 이청, 대청, 심중청, 청화묵, 양청

• 황색 계열: 석자황, 석웅황, 동황, 당황

• 흑백 계열: 진분, 정분, 당분, 진묵, 당묵, 송연

• 기타 재료: 아교, 교말, 법유, 명유

이상의 안료 가운데 광물로 제조된 것은 주토 · 뇌록 · 석록 · 삼록 · 대록 · 석청 · 청화 · 삼청 · 이청 · 대청 · 석자황 · 석웅황 등이다. 인공으로 제조된 것은 주홍 · 황단 · 하엽 · 진분 · 연지 · 동황 등으로 파악된다. 생물 소재는 패각으로 가공한 정분(합분)과 소나무를 소성하여 제조한 송연이 있다. 이밖에도 연지 · 전화(靛花) · 등황(藤黃) 등 천연 염료계 유기 안료가 사용됐다.

전통 안료의 소재 특성

예부터 전통 채색에 사용된 안료는 광물 소재가 대표적이다. 조선시대 궁궐의 단청이나 채색화에 사용된 안료 가운데 광물로 제조된 것은 주토 · 뇌록 · 석록 · 삼록 · 대록 · 석청 · 청화 · 삼청 · 이청 · 대청 · 석자황 · 석웅황 등이다. 뇌록은 우리나라에서만 산출된 광물 안료이며 대표적인 산지는 경상도 장기현 뇌성산이다.

조선시대 단청에 사용된 인공 제조의 대표적인 안료는 주홍 · 황단 · 하엽 · 진분 · 연지 · 동황 등이다. 단청에 사용된 주홍은 인공 유화 수은(硫化水銀)으로 은주(銀朱), 수화주(水花朱)라고 한다. 반면 약용으로 쓰인 천연 유화 수은은 진사(辰砂), 주사(朱砂), 단사(丹砂) 등으로 불린다. 『천공개물』에는 수은의 제련법과 수은과 유황을 혼합하고 가열하는 방법의 주홍 제조법이 전한다.

생물 소재 안료는 패각과 소나무를 재료로 사용하여 가공하거나 소성하여 제조한 것으로 정분과 송연이 있다. 정분은 유기물이 제거된 패각으로 제조된 합분(蛤粉)의 일종이다. 송연(松煙)은 소나무를 태울 때 나는 그을음을 말하는 것으로 주로 을 만들 때 사용되었다. 송연은 소목(小木)의 칠감으로 주로 사용되었으며 전통 단청 채색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채색 재료로써 활용되었다.

19세기부터 화학 합성으로 제조된 무기 안료가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화학 안료는 천연 안료에 비해 은폐력과 착색이 양호하며, 값도 싸고 채색이 용이했다. 그러나 화학 안료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강렬한 색조의 특징으로 전통 채색의 정체성이 훼손되는 현상을 가져왔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
『삼국사기』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단행본

김동현, 『한국고건축단장』(통문관, 1977)
장기인·한석성, 『한국건축대계Ⅲ, 단청』(보성문화사, 1982)
임영주, 『단청』(대원사, 1991)
곽동해, 『한국의 단청』(학연문화사, 2002)
김한옥, 『단청도감』(현암사, 2007)
곽동해 『한국단청의 원류』(학연문화사, 2011)
김희정, 『한국단청의 이해』(한티미디어, 2012)
곽동해, 『한국단청연구』(학연문화사, 2022)

논문

곽동해, 「연화머리초 성립에 대한 고찰」(『동악미술사학회』 제6집, 동악미술사학회, 2005)
김동현, 「한국의 단청 - 단청의 역사와 시공」(『공간』, 1974)
김동현·신영훈, 「한국고건축단창, 단청」(『공간』, 1971)
박미례, 『북한체제 전통미술의 변용과 보존 : 단청과 불화를 중심으로』(경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기타 자료

예용해,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단청」(문화재관리국, 1970)
예용해, 「단청」(『문화재』 제7호, 문화재관리국, 1973)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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