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신

  • 예술·체육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 도화서 교수를 역임한 화원.
이칭
  • 유능(幼能), 자익(子翼)
  • 이재(彛齋), 일재(逸齋)
인물/전통 인물
  • 본관개성(開城)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도화서 교수
  • 출생 연도1765년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4년
  • 류승민 (국가유산청 문화유산감정위원, 한국서화사)
  • 최종수정 2025년 12월 0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김양신은 조선 후기에 도화서 교수를 역임한 화원이다. 1765년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미상이다. 조선 후기에 여러 화원을 배출한 개성 김씨 출신으로, 아버지는 김응리, 큰아버지는 김응환이다. 형인 김득신과 김석신, 아들 김순종과 김은종, 손자 김제무까지 도화서에서 화원으로 활동했다. 도화서 교수를 역임한 사실로 보아 화격이 있는 그림을 제작했을 것 같으나 현존하는 작품이 없어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정의

조선 후기, 도화서 교수를 역임한 화원.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자익(子翼), 호는 일재(逸齋)다. 『청구서화보(靑丘書畵譜)』에는 자가 유능(幼能), 호가 이재(彛齋)라고 하였다. 개성 김씨는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을 배출한 가문으로 유명하다. 김응리(金應履)의 세 아들 중에 막내로 태어났다.

형은 김득신(金得臣)김석신(金碩臣)이다. 세 형제 모두 큰아버지 김응환(金應煥)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며 화가로서 성장했다. 아들 김순종(金舜鍾)과 김은종(金殷鍾), 김은종의 아들 김제무(金濟懋)까지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했다.

주요 활동

김득신과 김석신은 현존 작품을 통해 화풍 등을 살필 수 있으나, 김양신은 도화서 교수까지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현존작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청구서화보(靑丘書畵譜)』의 기록에 의하면 인물을 주로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도화서 교수를 지냈다는 사실이 『성원록(姓源錄)』에 있는 점으로 보면 화격이 있는 그림을 제작했을 것 같으나 현존하는 작품이 없어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참고문헌

  • 원전

  • - 『청구서화보(靑丘書畵譜)』

  • - 『성원록(姓源錄)』

  • 단행본

  • - 강관식, 『조선 후기 궁중화원 연구 상: 규장각의 자비대령화원을 중심으로』(돌베개, 2001)

  • 논문

  • - 박수희, 「조선 후기 개성 김씨 화원 연구」(서울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6)

  • - 박정혜, 「의궤를 통해서 본 조선시대의 화원」(『미술사연구』 9, 미술사연구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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