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자는 기숙(驥叔)이고, 호는 운초(雲樵)이다. 그 외 가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순조 대부터 고종 대까지 규장각 자비대령화원으로 활동했으며, 군수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1852년과 1861년에 있었던 어진(御眞) 도사(圖寫)에 참여했다. 1831년부터 1863년까지 도화서 화원을 대상으로 한 녹취재에 응시했는데, 문방과 매죽, 인물화에서 평균 이상의 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산수와 초충에서는 기량을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
대중의 수요에 부응하여 폭넓은 화제를 다루었는데, 부채 면에 정교하게 신선들을 그린 「군선도(群扇圖)」나 물고기 등을 소재로 한 「어해도(魚蟹圖)」 등은 능숙한 필치를 보인다. 반면, 미법산수화풍으로 그린 산수화는 뚜렷한 개성 없이 당시 유행한 전형적인 남종화풍을 답습하는 수준에 그쳤다.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개인 소장],「어해도」[개인 소장], 「군선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교원추순도(郊原秋鶉圖)」[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등이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