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종 ()

회화
인물
조선 후기, 순조 어진 제작에 참여하고 도석인물화 「호리건곤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
이칭
대중(大中)
송암(松庵)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81년
사망 연도
1841년
본관
개성(開城)
주요 작품
호리건곤도
주요 관직
감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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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건종은 조선 후기에 순조 어진 제작에 참여하고 도석인물화 「호리건곤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1781년에 태어나 1841년에 사망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전반까지 화업에 종사한 주요 화원 가문인 개성 김씨 출신이다. 「호리건곤도」 1점이 간송미술관에 전한다.

정의
조선 후기, 순조 어진 제작에 참여하고 도석인물화 「호리건곤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
가계 및 인적사항

김건종은 18세기 후반부터 화원을 다수 배출한 개성 김씨 출신이다. 자는 대중(大中), 호는 송암(松庵)이다. 할아버지는 김응리(金應履)이며, 아버지는 김득신(金得臣)이다.

할아버지 김응리는 화업에 종사한 흔적이 보이지 않지만, 김응리의 형 김응환(金應煥)은 정조 시대에 초대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으로서 크게 활약했다. 김건종의 작은아버지 김석신(金碩臣)김양신(金良臣)도 화업으로 이름을 날렸다.

김건종과 같은 항렬인 김화종(金和種), 김수종(金秀鍾), 김하종(金夏種), 김순종(金舜鍾), 김은종(金殷鍾) 등도 19세기에 이름을 남긴 화원 화가들이다. 그의 외가인 인동 장씨 또한 장한종(張漢宗)을 비롯한 여러 화원을 배출한 가문이다.

주요 활동

1796년(정조 20)부터 자비대령화원으로 봉직하기 시작하였고, 주1에서 인물화 부문에 응시하여 10여 차례 임용되었다. 1830년에는 순조 어진 제작에 주관 화사로 참여하여 감목관에 임명되었다. 1837년에 완성한 태조 어진 모사에 참여하였고, 그 포상으로 외직에 임명되었다. 도석인물화 「호리건곤도(壺裏乾坤圖)」 1점이 간송미술관에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화사양가보록(畵寫兩家譜錄)』

논문

박수희, 「조선 후기 개성 김씨 화원 연구」(『미술사학연구』 256, 한국미술사학회, 2007)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예조에서 해마다 두 차례 또는 네 차례씩 행하던 취재(取才). 녹봉을 받지 못하는 관리들에게 녹봉이 있는 벼슬을 주기 위해 행해졌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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