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사익(士益), 호는 기서(箕墅) · 순재(淳齋) · 활호자(活毫子) · 인곡(仁谷)이다. 그 외 생몰년이나 가계를 비롯한 생애를 재구성할 만한 사항은 미상이다. 다만, 1771년경부터 궁중 화업에 참여한 기록이 있고, 순조 시대 문신인 능산(菱山) 황기천(黃基天, 1760~1821)과 돈독한 사이였다고 하므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까지 활동했던 인물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의 여러 호 중에 '활호자(活毫子)'는 스스로 그림을 그려 생활했음을 천명한 호로 볼 수 있다. 김수규가 그림으로 생활했음을 전제하면, 전형적 문인 관료였던 황기천과의 관계는 화가와 후원자 혹은 구매자 등의 관계였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771년 『선원보략(璿源寶略)』을 수정하는 작업 인원에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1778년까지 도화서와 관련한 기록에 이름이 등장한다. 궁중 화업에 종사하는 일 외에도 주1이나 강남춘의(江南春意) 등의 고전적 주제와 연관된 산수화를 주로 그린 듯하다.
현전하는 작품 중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강남춘의도(江南春意圖)」,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의 「산수도[Rainy Landscape]」 등은 주문자의 문인적 취향에 맞춘 작품으로 볼 수 있으므로, 그는 남종문인화의 인기가 높았던 회화 시장의 유행에서 동떨어지지 않고 활발히 활동했던 화가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