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규 ()

기려도강도 / 김수규
기려도강도 / 김수규
회화
인물
조선 후기, 「강남춘의도」, 「산수도」 등의 남종문인화풍 산수화를 그린 도화서 화원.
이칭
기서(箕墅), 순재(淳齋), 활호자(活毫子), 인곡(仁谷)
사익(士益)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작품
산수도, 강남춘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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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수규는 조선 후기에 「강남춘의도」, 「산수도」 등의 남종문인화풍 산수화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나, 18세기 후반에 태어나 19세기 전반까지 활동하였다. 궁중의 화업에 종사하면서 개인 작업으로 소상팔경이나 강남춘의 등의 고전적 주제와 연관된, 남종문인화풍의 산수화와 인물화 등을 여러 점 남겼다.

정의
조선 후기, 「강남춘의도」, 「산수도」 등의 남종문인화풍 산수화를 그린 도화서 화원.
가계 및 인적사항

자는 사익(士益), 호는 기서(箕墅) · 순재(淳齋) · 활호자(活毫子) · 인곡(仁谷)이다. 그 외 생몰년이나 가계를 비롯한 생애를 재구성할 만한 사항은 미상이다. 다만, 1771년경부터 궁중 화업에 참여한 기록이 있고, 순조 시대 문신인 능산(菱山) 황기천(黃基天, 1760~1821)과 돈독한 사이였다고 하므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까지 활동했던 인물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의 여러 호 중에 '활호자(活毫子)'는 스스로 그림을 그려 생활했음을 천명한 호로 볼 수 있다. 김수규가 그림으로 생활했음을 전제하면, 전형적 문인 관료였던 황기천과의 관계는 화가와 후원자 혹은 구매자 등의 관계였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요 활동

1771년 『선원보략(璿源寶略)』을 수정하는 작업 인원에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1778년까지 도화서와 관련한 기록에 이름이 등장한다. 궁중 화업에 종사하는 일 외에도 주1이나 강남춘의(江南春意) 등의 고전적 주제와 연관된 산수화를 주로 그린 듯하다.

현전하는 작품 중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강남춘의도(江南春意圖)」,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의 「산수도[Rainy Landscape]」 등은 주문자의 문인적 취향에 맞춘 작품으로 볼 수 있으므로, 그는 남종문인화의 인기가 높았던 회화 시장의 유행에서 동떨어지지 않고 활발히 활동했던 화가였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단행본

『한국의 미: 12 산수화 하』(중앙일보사, 1982)
유복렬, 『한국회화대관』(문교원, 1969)
주석
주1

중국 후난성 둥팅호 남쪽에 있는 샤오샹(瀟湘)의 여덟 가지 아름다운 경치. 산시청람(山市晴嵐), 어촌석조(漁村夕照), 소상야우(瀟湘夜雨), 원포귀범(遠浦歸帆), 연사만종(煙寺晩鐘), 동정추월(洞庭秋月), 평사낙안(平沙落雁), 강천모설(江天暮雪)을 이른다. ⇒규범 표기는 ‘샤오샹 팔경’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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