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이며, 김장생(金長生)의 7대손이다. 자는 치규(穉奎)이고, 아호는 이호(梨湖) · 죽하(竹下) · 이오(梨塢) · 낭간거사(琅玕居士) · 양화산초(陽和山樵)이다. 배와(坯窩) 김상숙(金相肅, 17171792)의 두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으나, 후에 큰아버지인 김상복(金相福, 17141782)에게 입적됐다. 전주 이씨와 혼인하여 2남 3녀를 두었다. 친아버지 김상숙은 영 · 정조 시대 소해의 명필로 유명했다.
외가는 청송 심씨이다. 심정주(沈廷胄) · 심사정(沈師正) 부자가 김기서에게 외종조할아버지가 되고, 외숙부 송계(松溪) 심협(沈埉, 1724~?)도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김상숙의 재혼으로 인해 함평 이씨인 화가 기야(箕埜) 이방운(李昉運, 1761~1815 이후)과도 5촌 숙질 사이가 되었다.
양아버지 김상복이 처했던 정치적 고난에 따라 청장년기를 모두 낙향지인 충청도 홍성에서 생활했다. 1800년에 사면을 받아 1812년에 첫 관직에 나아간 후, 청도군수를 지낸 뒤에 생을 마감했다.
화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지는 않은 듯하나, 금강산 초입의 단발령에서 금강산을 바라본 풍광을 그린 「단발령도(斷髮嶺圖)」가 전해오고 있다. 성해응(成海應)이 그의 그림에 부친 제화시도 전하며, 문집에 서화를 수장하거나 감상한 글이 다수 있어 서화 관련 활동을 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명필로 유명했던 황운조(黃運祚, 17301800), 남공철(南公轍)의 종손자인 남주헌(南周獻, 17691821) 등과 교유했다.
문집 『화초만고(和樵謾稿)』가 연세대학교 도서관과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으며, 제1책에 남주헌의 서문[1817년], 제5책에 성해응의 서문[1828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