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계윤(季潤), 호는 배와(坯窩)·초루(草樓). 아버지는 판윤 김원택(金元澤)이며, 어머니는 우윤 심정보(沈廷輔)의 딸이다.
1744년(영조 20)에 진사가 되고, 1752년에 명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그 뒤 장례원봉사(掌隷院奉事)·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종부시직장(宗簿寺直長)·공조좌랑·낭천현감·양근군수를 두루 역임하고, 1764년 세자익위사사어(世子翊衛司司禦)·사옹원주부·공조정랑을 거쳐,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천성이 바르고 평소 외형적인 출세보다는 내면적인 득도에 관심이 깊었다.
『주역(周易)』·『논어(論語)』·『노자(老子)』 등을 애독하였으며, 두시(杜詩: 두보의 시)와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다. 작품으로는 파주에 있는 「영상황보인표문(領相皇甫仁表文)」·「참판이희조표문(參判李喜朝表文)」과 홍천에 있는 「수타사서곡당선사탑비문(壽陀寺瑞谷堂禪師塔碑文)」·「신흥사비문(新興寺碑文)」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