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은 조선 후기 「파적도」, 『긍재풍속화첩』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대표적 화원 집안인 개성 김씨 출신이다. 1783년(정조 7) 실시된 초대 차비대령화원 선발에 합격했고, 이인문과 함께 정조의 가장 큰 신임을 받았다. 1815년(순조 15)까지 40여 년 동안 20여 차례 궁중 행사에 차출되었다. 1796년(정조 20) 이인문, 장한종, 이명규 등과 함께 『화성행행도』 제작에 참여했다. 다양한 화목의 그림을 남겼는데, 김응환과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긍재풍속화첩』(간송미술관)이 있다.
본관은 개성(開城)이다. 자는 현보(賢輔), 호는 긍재(兢齋) · 홍월헌(弘月軒)이다. 개성 김씨는 조선 후기 대표적 화원 가문이며, 아버지는 첨추를 지낸 김응리(金應履), 큰아버지는 정조 연간의 대표적 규장각 차비대령화원인 김응환(金應煥, 1742~1789)이다. 동생은 김석신(金碩臣)과 김양신(金良臣), 아들은 김건종(金建鍾), 김수종(金秀鍾), 김하종(金夏鍾)인데, 모두 화원이다.
외가인 신평 한씨도 화원 집안이다. 외할아버지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한중흥(韓重興)이고, 외삼촌이 한종유(韓宗裕), 한종일(韓宗一)이다.
18세 때인 1772년(영조 48) 제작된 『육상궁시호도감의궤(毓祥宮諡號都監儀軌)』부터 이름이 등장한다. 1783년(정조 7) 실시된 초대 차비대령화원 선발에 합격했고, 이인문과 함께 정조의 가장 큰 신임을 받았다. 1784년(정조 8) 어제(御製) 인찰(印札)에 참여하여 변장에 제수되었다.
1791년(정조 15) 이명기가 주관 화사를 담당한 정조 어진 도사(圖寫)에 신한평, 이종현, 한종일 등과 함께 수종화사로 참여했다.
1795년(정조 19)에는 을묘년 원행 후에 「진찬도」 병풍을 제작하여 무명필과 베 1필을 받았다. 1796년(정조 20) 환조(桓祖)의 여덟 번째 주갑을 맞아 환조와 의혜왕후(懿惠王后)의 위판을 영흥본궁(永興本宮)에 추가 배향하고 개간(改刊)할 때, 인찰 화원으로 참여하여 목(木) 일필(一疋)을 받았다. 같은 해 이인문, 장한종, 이명규 등과 함께 『화성행행도』 제작에 참여했다.
1815년(순조 15)까지 40여 년 동안 20여 차례 궁중 행사에 차출되었으며, 화사 군관으로 초도첨절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김득신의 작품은 김응환과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산수화에서는 김응환의 필묵법이, 풍속화, 영모화, 도석인물화에서는 김홍도의 형식과 양식이 발견된다. 대표작으로는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파적도(破寂圖)」, 『긍재풍속화첩』과 리움미술관에 소장된 「풍속팔곡병(風俗八曲屛)」, 「신선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