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신 ()

산수도 / 김후신
산수도 / 김후신
회화
인물
조선 후기, 「야압도」, 「대쾌도」 등을 그린 도화서 화원.
이칭
이재(彛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35년(영조 11)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전주(全州)
주요 작품
야압도, 대쾌도
주요 관직
선공감 주부|사근도 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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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후신은 조선 후기 「야압도」, 「대쾌도」 등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아버지는 도화서 화원인 김희겸이다. 인의, 선공감 주부, 사근도 찰방 등을 역임했다. 1773년 영조 80세 어진 도사에 수종화사로 참여해서 수령으로 승전되었다. 1781년에는 정조 31세 어진 도사에 수종화사로 참여했다. 산수, 인물, 화조, 영모 등을 그렸고, 대표작으로는 「산수도」, 「야압도」, 「대쾌도」 등이 있다.

정의
조선 후기, 「야압도」, 「대쾌도」 등을 그린 도화서 화원.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이재(彛齋)이다. 아버지는 도화서 화원인 불염재(不染齋) 김희겸(金喜謙)이다. 김희겸이 경아전(京衙前)들이 기거한 옥류동 근처에서 활동하며 여항 문인과 모임을 개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 같다.

주요 활동

1763년(영조 39) 인의(引儀)에 임명되었고, 이후 선공감 주부, 사근도(沙斤道) 찰방을 거쳤다. 1773년(영조 49) 변상벽(卞相璧), 신한평(申漢枰), 김관신, 진응복과 함께 영조 80세 어진 도사(圖寫)에 수종화사로 참여한 공로로 수령으로 승전되었다. 1781년(정조 5)에는 김홍도, 한종유와 함께 정조 31세 어진 도사에 수종화사로 참여하였다.

그 밖에도 시호도감(諡號都監), 국장도감(國葬都監), 상시도감(上諡都監), 추숭도감(追崇都監), 책례도감(冊禮都監), 부묘도감(祔廟都監), 존호도감(尊號都監) 등 궁중 행사 관련 업무에 참여했다.

조선 후기 무신인 김응하(金應河) 관련 기록인 『중간충렬록(重刊忠烈錄)』에 김후신이 「우적파진도(遇賊擺陣圖)」, 「의수사적도(倚樹射賊圖)」, 「사후악검도(死後握劒圖)」, 「양수투항도(兩帥投降圖)」 등을 그렸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현전하는 대표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산수도」와 「야압도」, 간송미술관 소장 「대쾌도」가 있다.

참고문헌

원전

『중간충렬록(重刊忠烈錄)』

단행본

『한국역대서화가사전 상』(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강관식, 『조선 후기 궁중화원 연구 상: 규장각의 자비대령화원을 중심으로』(돌베개, 2001)

논문

김수진, 「불염재 김희성의 회화 연구」(서울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6)
박정혜, 「의궤를 통해서 본 조선시대의 화원」(『미술사연구』 9, 미술사연구회, 1995)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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