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옥애(玉崖). 조세걸(曺世傑)에게 그림을 배웠다. 평양에서 활동했으며, 벼슬은 만호(萬戶)를 지냈다. 초상화에 특히 뛰어나 1712년 평양 무열사(武烈祠)에 있는 명나라의 장군 이여백(李如柏)의 초상을 모사하여 동지사행(冬至使行)편으로 중국에 보낸 바 있다.
이때 발군의 기량을 인정받고, 1713년 숙종어진 원유관본(遠遊冠本)과 익선관본(翼善冠本)을 도사(圖寫)할 때에 어진도감(御眞都監) 제조인 김진규(金鎭圭)와 민진원(閔鎭遠)의 천거에 의해 진재해(秦再奚) 등과 더불어 어용화사로 발탁되었다.
유작으로는 1720년 박동보(朴東普)·장득만(張得萬) 등과 함께 그 전해에 있었던 기로연(耆老宴)의 장면과 참석 중신들의 초상을 그린 「기사계첩(耆社契帖)」이 전한다. 이밖에 그의 작품으로 4폭의 「성적도(聖蹟圖)」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