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휘 ()

회화
인물
활동 시기와 국적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화가.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작품
하경산수도, 동경산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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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고연휘는 현재 활동 시기와 국적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화가이다. 일본 문헌인 『군대관좌우장기』에는 “고연휘는 원대 사람이고, 혹 일본에서는 그의 자가 연휘라고 전해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원대 화가 고극공의 자인 ‘언경’이 고연휘의 ‘연휘’로 와전된 까닭에 고언경과 고연휘가 같은 인물이며, 고극공이 고연휘로 잘못 알려져 왔다. 또한 고연휘의 전칭작인 「하경산수도」가 중국 및 일본 미법산수화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어, 고연휘를 한국 화가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정의
활동 시기와 국적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화가.
가계 및 인적사항

중국의 어떤 문헌에도 등장하지 않는 일전(逸傳) 화가이다. 고연휘를 중국 화가로 보는 근거는 『군대관좌우장기(君台觀左右帳記)』이다. 이 문헌에는 “고연휘는 원대 사람이고, 혹 일본에서는 고극명의 자가 연휘라고 전해진다(高然暉 元, 或曰來高克明字然暉)”라는 기록과, 미우인(米友仁, 1075~1151)과 유사한 산수화를 그렸다는 언급이 있다.

학계에서는 원대 미법산수화의 대가 고극공(高克恭, 1248~1310)의 자인 ‘언경(彦敬)’이 고연휘의 ‘연휘’로 와전되었다는 의견, 즉 고언경과 고연휘는 같은 인물인데, 고극공이 고연휘로 잘못 알려졌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어 왔다. 고연휘의 전칭작인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가 중국 및 일본 미법산수화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어, 고연휘를 한국 화가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이 작가에 대한 정확한 국적은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어야 규명이 가능하다.

주요 활동

현재 전칭 산수화 몇 점이 일본에 남아 있다. 교토[京都] 콘지인[金地院]에 소장된 「하경산수도」와 「동경산수도(冬景山水圖)」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경산수도」와 「동경산수도」에는 작가 관련 인장이나 관서, 제발(題跋)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점의 산수화가 고연휘 필(筆)로 전칭된 까닭은 이 그림들이 담긴 상자 표면에 ‘고연휘산수(高然暉山水)’라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고연휘를 국내 화가로 간주하는 입장에서는 두 폭 산수화의 제작 시기를 고려시대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두 폭 산수화가 대진(戴進) 이후 명대 절파 주1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시대 그림이라 할 수 없다.

참고문헌

원전

『군대관좌우장기(君台觀左右帳記)』

논문

장진성, 「동아시아 회화사와 그림의 국적 문제: 고려·조선시대 전칭 회화작품에 대한 재검토」(『미술사논단』 30, 한국미술연구소, 2010)
주석
주1

중국 명나라 말기에 유행한, 필묵이 웅건하고 거친 산수화 화풍.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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