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원(性源), 호는 산천(山泉). 노경(魯敬)의 아들이며, 정희(正喜)의 아우이다. 학문이 깊고 시문과 글씨에 능하였다. 1810년 진사에 급제하여 홍문관직제학을 지냈으며, 관직은 강동현령(江東縣令)에 그쳤다.
1822년 동지 겸 사은정사인 아버지를 따라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서 연경(燕京)에 들어가 청나라의 금석학자 유희해(劉喜海) 및 진남숙(陳南淑)·오숭량(吳嵩梁)·이장욱(李璋煜) 등의 명사들과 교분을 맺었다. 특히 유희해에게 우리나라의 금석학본을 기증하여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을 편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의 글씨는 구양순(歐陽詢)의 법을 따랐지만 형 정희의 글씨를 익혔으며, 특히 그의 소해(小楷)는 형의 글씨와 흡사하다. 그리고 감식에도 상당히 뛰어났으나 형의 명성이 워낙 높아 오히려 빛을 발휘하지 못한 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