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는 조선 후기에 홍문관 직제학, 강동현령을 역임한 서예가이다. 김노경의 아들이며 추사 김정희의 아우이다. 아버지 김노경과 함께 1822년(순조 22) 10월 연경을 방문했을 때 청대 금석학자와 활발하게 교유하였고, 그들과 김정희가 친분을 쌓는 데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학문이 깊고 시문과 서예에 능했으며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관련 자료에는 고려대학교 소장 『청조명가서독』과 필사본 시집인 『산천시』가 있다. 서예가로도 명망이 있었다. 구양순체를 따랐으며, 소해는 형 김정희의 글씨와 매우 흡사하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원(性源), 호는 산천(山泉)이다. 김노경(金魯敬)의 아들이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동생이다. 1810년(순조 10) 진사에 급제하여 홍문관 직제학을 지냈으며, 관직은 강동현령(江東縣令)에 그쳤다.
김노경이 1822년(순조 22) 10월에 동지정사로 두 번째 연경을 방문했을 때, 김명희가 자제군관으로 동행하여 청의 금석학자와 활발하게 교유했다. 유희해(劉喜海) 및 진남숙(陳南淑), 오숭량(吳嵩梁), 이장욱(李璋煜) 등의 명사들과 교분을 맺으며 이들을 형 김정희와 연결해 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동시대 활동한 정학연, 정학유, 홍석주, 홍현주 등과도 시서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았다.
학문이 깊고 시문과 서예에 능했으며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글씨는 구양순체(歐陽詢體)를 따랐으며, 소해는 형 김정희의 글씨와 매우 흡사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는 김노경, 김명희가 청조 문사들로부터 받은 주1을 모아 편찬한 필사본인 『척독장거집(尺牘藏거集)』이 소장되어 있다. 이 척독집에는 청조 문사 14명의 척독 28편이 수록되어 있다. 김노경에게 보낸 척독이 6편이고, 김명희에게 보낸 척독이 22편이다.
또한 김명희 관련 자료에는 고려대학교 소장 『청조명가서독(淸朝名家書牘)』과 필사본 시집인 『산천시(山泉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