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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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글씨
김명희 글씨
회화
인물
조선후기 홍문관직제학, 강동현령을 역임한 서예가.
이칭
성원(性源)
산천(山泉)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88년(정조 12)
사망 연도
1857년(철종 8)
본관
경주(慶州)
주요 관직
홍문관직제학|강동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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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홍문관직제학, 강동현령을 역임한 서예가.
내용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원(性源), 호는 산천(山泉). 노경(魯敬)의 아들이며, 정희(正喜)의 아우이다. 학문이 깊고 시문과 글씨에 능하였다. 1810년 진사에 급제하여 홍문관직제학을 지냈으며, 관직은 강동현령(江東縣令)에 그쳤다.

1822년 동지 겸 사은정사인 아버지를 따라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서 연경(燕京)에 들어가 청나라의 금석학자 유희해(劉喜海) 및 진남숙(陳南淑)·오숭량(吳嵩梁)·이장욱(李璋煜) 등의 명사들과 교분을 맺었다. 특히 유희해에게 우리나라의 금석학본을 기증하여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을 편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의 글씨는 구양순(歐陽詢)의 법을 따랐지만 형 정희의 글씨를 익혔으며, 특히 그의 소해(小楷)는 형의 글씨와 흡사하다. 그리고 감식에도 상당히 뛰어났으나 형의 명성이 워낙 높아 오히려 빛을 발휘하지 못한 느낌이 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한국(韓國)의 미(美)』 17 -추사김정희(秋史金正喜)-(임창순 감수, 중앙일보사, 1985)
『한국서화인명사서(韓國書畵人名辭書)』(김영윤, 예술춘추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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