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광주부유수, 지돈녕부사,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대사헌을 거쳐 1827년 판의금부사 · 광주부유수 · 지돈녕부사 등의 요직을 거치고, 사행(使行)으로서 1809년 동지 겸 사은부사로, 1822년에는 동지사로 연경에 다녀왔다.
그러나 익종이 대리청정을 할 때 김로(金鏴) · 홍기섭(洪起燮) 등과 같이 중직에 있으면서 전권을 행사하고, 이조원(李肇源)의 옥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1830년 지돈녕부사 재직 중 삼사와 의정부의 탄핵을 받아, 강진현의 고금도(古今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1833년에 귀양에서 풀려나 판의금부사를 지낸 뒤 1837년에 졸하였다.
사후인 1840년에 김홍근(金弘根)이 윤상도(尹尙度)의 옥사를 재론하여 관작이 추탈되었다. 1857년(철종 8)에 시원임대신(時原任大臣)의 연차(聯箚)로 신원되고 관작이 복구되었다. 글씨를 잘 써 아들인 김정희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신라경순왕전비(新羅敬順王殿碑)」 · 「신의왕후탄강구묘비(神懿王后誕降舊墓碑)」 등의 글씨가 전한다.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헌종실록(憲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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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九(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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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동지사로 연경행 : 『순조실록』 12권, 1809년(순조 9) 9월 10일. "좌의정 김재찬이 동지사의 선발에 관해 주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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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고금도 위리안치 : 『순조실록』 31권, 1830년(순조 30) 10월 8일. "의금부에서 김노경을 강진현 고금도에 안치하였다고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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