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응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한성판윤,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유일(唯一)
  • 일와(一窩)
  • 시호정헌(正獻)
인물/전통 인물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824년(순조 2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판서
  • 출생 연도1757년(영조 3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정기 (창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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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한성판윤,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유일(唯一), 호는 일와(一窩). 영의정 김흥경(金興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한정(金漢禎)이고, 아버지는 문화현령 김태주(金泰柱)이며, 어머니는 이명경(李命冏)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86년(정조 10) 진사시에 합격하여 1796년 별시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글자 한 자가 빠졌다고 하여 낙방되고 말았다. 그 뒤 헌릉참봉을 제수받았다가, 곧 전생서직장 · 활인서별제 · 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장악원주부로 있으면서 1805년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병조좌랑 · 정언 · 지평 등을 거쳐 1807년 사복시정 · 응교를 지내고, 동지사서장관(冬至使書狀官)으로 연경에 다녀왔다. 1808년 황해도암행어사로 지방관의 탐학을 제거하고자 노력하였고, 1811년 대사성이 되었다가 곧 경주부윤이 되었다.

그해 평안도에서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병사를 징발하여 대비시켰다. 동래부사 · 경상도관찰사 · 지중추부사 · 형조판서 등을 거쳐서, 1812년 한성부판윤에 이어 병조판서 겸 동지성균관사에 이르러 병으로 은퇴하였다.

평소 효행과 우애가 돈독하고 검소하였으며, 경사(經史)를 널리 섭렵하였다. 『중용(中庸)』을 좋아하였고, 역대의 사실이나 조선의 전고(典故)에도 밝았다. 시호는 정헌(正獻)이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운석유고(雲石遺稿)』

주석

  • 주1

    : 진사 급제 : 『숭정3병오식년사마방목(崇禎三丙午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84])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九(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주3

    : 황해도 암행어사 : 『순조실록』 11권, 1808년(순조 8) 9월 7일. "황해도 암행 어사 김노응이 현감들의 실정과 치적 및 폐단에 대해 보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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