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악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황해도도사, 현릉령, 흡곡현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독좌와(獨坐窩)
  • 동첨(東瞻), 수이(秀而)
인물/전통 인물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759년(영조 3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흡곡현령
  • 출생 연도1694년(숙종 2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정기 (창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1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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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황해도도사, 현릉령, 흡곡현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동첨(東瞻) · 수이(秀而), 호는 독좌와(獨坐窩). 김시현(金時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빈(金彬)이고, 아버지는 김정상(金鼎相)이며, 어머니는 부사 이적(李菂)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6년에 사마양시에 모두 합격하고, 생원시에는 장원으로 선발되었으며, 1733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들어간 뒤 감찰로 나갔다가 1736년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으로 나갔다가 임기가 되어 중앙으로 돌아와 낭서(郎署)가 되었는데, 이때 당하관으로 승교(乘轎)하였다 하여 처벌을 받았다.

이듬해 황해도도사가 되고, 이어 현릉령(顯陵令)을 지내다가 귀향한 뒤 효성으로 이름이 나서 충청도관찰사 서종급(徐宗伋)의 추천으로 흡곡현령(歙谷縣令: 지금 강원도 통천의 한 지명)에 제수되었다.

효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충과 믿음도 돈독하여 참의 김변광(金汴光), 교리 권세숙(權世橚)과 함께 당시 호서지방의 진신(縉紳: 관직에 있는 사대부의 총칭)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또한, 근세인의 좋은 말과 행동을 수집하여 정리하니, 그 이름을 『문견록(聞見錄)』 이라 하고 모범으로 삼았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순암집(順菴集)』

주석

  • 주1

    : 사마시 급제 : 『병오식년사마방목(丙午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70])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김광악의 효행 : 『정조실록』 29권, 1790년(정조 14) 1월 27일. "충청 관찰사 권엄이 효자 열녀에 관한 장계를 올리니 하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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