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연구의 개척자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鄰, 18791948]가 수집하고 연구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관련 자료 중 일부를 2006년 그의 아들 후지츠카 아키나오[藤塚明直, 1912~2006]가 절차에 따라 과천시에 기증한 서신 23점이다. 추사가 40대 전반에 동생 김명희(金命喜)와 김상희(金相喜)에게 써 보낸 것이 13점으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과천에 머물던 말년에 그와 교류하였던 민태호(閔台鎬)에게 보낸 5통, 이상적에게 보낸 4통, 권돈인(權敦仁)에게 보낸 1통 등 10점이 포함되어 있다. 2010년 9월 8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추사박물관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후지츠카 아키나오가 기증한 추사 서신 23점은 동생들에게 보낸 13점과 그와 교류한 주변 인물에게 보낸 10점으로 크게 구분된다.
먼저 두 동생에게 보낸 편지 13통은 후지츠카 치카시가 자료 보존을 위해 두루마리 하나에 표구해 놓은 상태이다. 이 서신은 추사의 일생에서 가장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던 40대 전반기(42~45세)에 쓴 편지인데, 주로 가족의 안부와 건강에 관한 내용이다. 부친의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지 병세와 처방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막내아우의 아들 출생을 축하하기도 하고 친척 중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도 언급되어 있다. 그 밖에 추사 본인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관직 생활의 긴장감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서신에는 가족 구성원의 여러 정황을 군데군데 밝히고 있어 40대 전반의 추사가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고모의 손자인 민태호(1834~1884) 등에게 보낸 편지는 5점으로 북청에서 돌아와 말년을 보냈던 과천에서 쓴 것이다. 서신 중에 간간이 “일흔 먹은 추한 몰골”이라는 표현에서 쓸쓸하고 처연한 말년의 적나라한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지금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하고 초시 합격을 축하한다는 내용과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김백련의 아들을 소개하며 그가 30줄을 읽어 내려가는 문리(文理)가 있으니 함께 어울려 공부하라는 당부도 보인다. 그리고 공부의 순서를 일러주며 『예운(隸韻)』은 쉽게 덤벼들려고 해서는 안 되니, 이는 마치 백가성(百家姓)도 익히지 못한 자가 『주역(周易)』을 읽으려 드는 것과 다름없다고 타이른다. 이처럼 그가 집안의 어른으로서 주변 친척을 세심하게 보살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추사 말년 과천 시절에 교류한 사람들과 자신의 심리적 정서 상태 등이 차분하고도 완숙한 표현들이 글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오늘날 추사의 걸작으로 회자되는 「세한도(歲寒圖)」를 넘겨받았던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1804∼1865))에게 보낸 편지 4통이 포함되어 있다. 이 편지도 추사 말년 과천 시절에서 쓴 편지로 형식에 있어서 사뭇 격식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문장에 있어서 완성도가 높으며 내용에서 있어서도 이상적과의 만남을 두루 엿볼 수 있다. 북청에서 풀려나 과천에서 지냈던 그 해 겨울에 쓴 편지에서 “온갖 감회가 오장을 휘감고 돌아 견딜 수가 없다”라며 자신의 처지를 술회하고 있다. 이처럼 내면의 격한 감정을 스스럼없이 보이고 있어 일생 동안 변함없이 자신을 따른 이상적에 대한 남다른 친밀감을 보여준다. 이상적은 추사의 귀양 시절에 중국 자료를 제공하여 청나라 학술계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사람으로 편지에도 이러한 내용들이 자주 보인다. 그밖에 청나라의 학문적 동지라든지 서적의 구입 방법 등에 대해 세세히 밝히고 있어 추사가 노년에도 여전히 학문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권돈인(17831859)에게 보낸 편지는 비교적 긴 호흡의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역시 과천에서 쓴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은 권돈인이 소장하고 있는 왕문혜본(王文惠本) 「왕희지난정서(王羲之蘭亭序)」탁본을 보여 달라는 표현이 구구절절하다. 이처럼 탁본이 지닌 의의를 밝히고 자신이 꼭 봐야 한다는 뜻을 여러 이유를 들어 설명하였다. 자신의 남은 인생이 길어야 34년이니 탁본첩을 꼭 보여 달라는 간곡한 정황이 잘 나타나 있다. 이는 금석문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말년의 예술가로서의 열정적 의지를 보이고 있다.
추사 서신 23점은 대부분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새로운 자료이다.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산 정약용(丁若鏞)과 그의 아들 정유산(丁由山) · 정학연(丁學淵)에 관한 내용들이 언급되어 있어 다산 일가와의 남다른 인연을 보여준다. 또한 주변 인물에게 보낸 편지에는 추사 말년 과천에서의 삶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어 그의 말년의 일면을 잘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가 평생 추구한 서예미라는 형식의 정중함뿐 아니라 문장에 있어서도 시종 유려한 언어와 적절한 비유가 잘 조화되었다는 특징을 보인다.
지금도 추사가 쓴 작품과 서간은 그의 명성에 걸맞게 적지 않게 남아 있다. 그러나 그의 문집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대부분 별 개의 형태로 모여져 있을 뿐 그 전모를 확인할 수 있는 온전한 자료는 흔치 않은 실정이다. 지난 2006년 추사 연구의 선구자였던 일본인 후지츠카 치카시가 수집한 자료 중 일부가 그의 아들 아키나오에 의해 과천시에 기증되었다. 이들 서신은 명희와 상희 두 동생과 추사 말년 과천에 머물면서 교류한 이상적 · 권돈인 · 민태호 등에게 보낸 것이다. 이 중에는 추사 말년에 과천에서 주변 인물에게 보낸 편지가 다수 포함되어 그의 말년의 생애와 서예미의 일면을 살피는데 일정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