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종 ()

장안사 / 김하종
장안사 / 김하종
회화
인물
조선 후기, 『해산도첩』, 『풍악권』 등을 그린 도화서 화원.
이칭
대여(大汝)
유당(蕤堂), 이당(怡堂), 유재(蕤齋), 설호산인(雪壺山人)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93년(정조 17)
사망 연도
미상
본관
개성(開城)
주요 작품
해산도첩, 풍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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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하종은 조선 후기에 『해산도첩』, 『풍악권』 등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할아버지는 김응환, 아버지는 김득신, 형은 김건종이다. 순조 대 중반경인 1816년 6월 14일부터 녹취재에 참여한 뒤, 1863년 3월 26일까지 47년간 녹취재에 참여했다. 금강산 일대를 그린 진경산수화첩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해산도첩』[1815]과 『풍악권』[1865]이 있다.

정의
조선 후기, 『해산도첩』, 『풍악권』 등을 그린 도화서 화원.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개성(開城)이다. 자는 대여(大汝)이고, 호는 유당(蕤堂) · 이당(怡堂) · 유재(蕤齋) · 설호산인(雪壺山人)이다. 1793년(정조 17) 생이며, 몰년은 확인되지 않았다. 『순종왕세자수책시책례의궤(純宗王世子受冊時冊禮儀軌)』(1875) 중 「반차도(班次圖)」를 그려 상을 받았고, 『승정원일기』 고종 15년(1878) 1월 25일 기사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 무렵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응환(金應煥)의 손자이고, 김득신(金得臣)의 셋째 아들이다.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 김건종(金建種)이 형이다.

주요 활동

1812년(순조 12) 효명세자 책봉을 위한 책례도감(冊禮都監)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1816년(순조 16) 6월 14일부터 1863년(철종 14) 3월 26일까지 47년간 녹취재에 참여했다. 총 113회의 녹취재에 응시하여 39회 1, 2위를 차지했으며, 차비대령화원 기간 동안 17회에 걸쳐 사과(司果), 사정(司正)에 부록되었다.

문방과 속화의 점수가 가장 높고, 매죽과 산수도 높은 편이었다. 영모와 인물의 점수가 낮은 편이었으나, 1830년(순조 30) 순조 어진, 1852년(철종 3)과 1861년(철종 12) 철종 어진을 그릴 때 차비대령화원으로 참여했다.

금강산 일대를 그린 『해산도첩(海山圖帖)』[1815]과 『풍악권(楓嶽卷)』[1865]이 남아 있다. 두 개의 화첩은 금강산, 관동팔경, 설악산을 그린 것인데, 25폭으로 구성된 『해산도첩』은 소화(小華) 이광문(李光文)의 주문으로, 64폭으로 구성된 『풍악권』은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의 주문으로 제작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내각일기(內閣日記)』

단행본

강관식, 『조선 후기 궁중화원 연구 상: 규장각의 자비대령화원을 중심으로』(돌베개, 2001)

논문

최지은, 「19세기 조선 유당 김하종의 실경산수화 연구: 《해산도첩》과 《풍악권》을 중심으로」(홍익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18)
박수희, 「조선 후기 개성 김씨 화원 연구」(서울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6)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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