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누각산수도는 누각을 중심으로 주변의 자연경관이 그려진 산수화이다. 명승지의 경관을 조망하기 위하여 세워진 높은 누각이 주로 그려졌다. 악양루, 황학루, 등왕각 등을 그린 누각산수도들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누각산수도는 우리나라에서도 전해져 조선 초기 문청의 「누각산수도」, 이수문의 「악양루도」가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에 정선의 「동정악루도」, 김득신의 「동정추월도」 뿐만 아니라 계회도, 청화백자 문양으로도 그려졌다. 조선 후기 이후 남종화의 유입과 더불어 소박한 초가집을 즐겨 그렸던 원나라 예찬 식의 산수화가 유행하면서 누각산수도는 쇠퇴하였다.
정의
누각을 중심으로 주변의 자연경관이 그려진 산수화.
개설
중국의 누각산수도
누각산수도는 산수 배경에 계화(界畵) 기법으로 묘사된 누각이 어우러지는 것이 상례이다. 원대(元代)에 누각을 치밀한 계화로 그려낸 하영(夏永, 14세기 중엽 활동)과 청대 원강(袁江)의 누각산수도가 유명하였다.
한국의 누각산수도
이들 누각산수도의 도상은 명(明)의 사신(使臣) 주지번(朱之蕃)이 조선에 왔을 때 주고 간 서화합벽첩(書畵合璧帖)인 『천고최성첩(千古最盛帖)』의 「악양루도」와 「등왕각도」의 도상이 범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심사정의 「동정추월도」(간송미술관)와 이방운의 「해상선인도(海上仙人圖)」에서는 중국에서 전래된 산수화보(山水畵譜)인 『명산도(名山圖)』 중의 「악양도」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누각산수도는 조선 후기 이후 남종화의 유입과 더불어 예찬(倪瓚)식의 소박한 모옥(茅屋)이 즐겨 그려지면서 쇠퇴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회화사』(안휘준, 일지사, 1980)
- 『한국의 미』11 산수화 상(안휘준 감수, 중앙일보사, 1980)
- 「중국시문을 주제로 한 조선후기 서화합벽첩 연구」(유미나,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 『東洋畵題綜覽』(金井紫雲 編, 東京: 歷史圖書社, 197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