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치욱 ()

묘길상도 / 엄치욱
묘길상도 / 엄치욱
회화
인물
조선 후기, 「백악산도」, 「묘길상도」, 「죽서루도」 등을 그린 화가.
이칭
경지(敬之)
관호(觀湖)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영월(寧越)
주요 작품
백악산도, 묘길상도, 구룡연도, 죽서루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엄치욱은 조선 후기 「백악산도」, 「묘길상도」, 「죽서루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화성 성역에 동원되었으며, 정조의 산릉 조성과 인정전의 영건에 참여하였다. 훈련도감 소속 방외화사로 여겨지며, 정선과 김홍도의 화풍을 이은 진경산수화를 남겼다.

정의
조선 후기, 「백악산도」, 「묘길상도」, 「죽서루도」 등을 그린 화가.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영월(寧越)이다. 자는 경지(敬之), 호는 관호(觀湖)이다. 생몰년이나 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주요 활동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따르면 훈련도감 소속 마병(馬兵)으로 화성 성역에 동원되었다. 1795년 윤 2월과 1796년 9월 10일, 두 번에 걸쳐 상전(賞典)에 이름을 올렸다. 성역 과정에서 공로를 인정받았는지 성역소(城役所)가 파한 뒤 설치된 의궤청에서도 계속 일했다. 1800년 정조의 산릉(山陵) 조성과 1804년 인정전(仁政殿) 영건(營建)에 참여했으며, 두 의궤에 모두 훈국화사(訓局畵師)와 방외화사(方外畵師)로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도화서 화원은 아닌 듯하며, 훈련도감 소속의 방외화사였던 듯하다. 의궤에서 보듯이 주로 성곽 축조, 산릉 조성, 궁궐 이건 등 건축과 관련된 곳에서 활동했다.

현전하는 엄치욱의 작품들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백악산을 그린 작품은 정선(鄭敾)의 영향이 두드러지고, 묘길상(妙吉祥), 구룡폭포, 죽서루를 그린 장면들은 김홍도(金弘道) 화풍이 여실히 드러난다. 백악을 보다 넓은 시점에서 조망하거나 죽서루를 포착하는 시점을 달리하는 등 부분적으로 변화를 주었다. 조선 후기에 크게 풍미한 진경산수화의 여맥을 이었으나, 전대의 화풍을 답습하는 데 그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정조건릉산릉도감의궤(正祖健陵山陵都監儀軌)』
『인정전영건의궤(仁政殿營建儀軌)』

단행본

『한국역대서화가사전 상』(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논문

박정혜, 「의궤를 통해서 본 조선시대의 화원」(『미술사연구』 9, 미술사연구회, 1995)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