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월(寧越)이다. 자는 경지(敬之), 호는 관호(觀湖)이다. 생몰년이나 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따르면 훈련도감 소속 마병(馬兵)으로 화성 성역에 동원되었다. 1795년 윤 2월과 1796년 9월 10일, 두 번에 걸쳐 상전(賞典)에 이름을 올렸다. 성역 과정에서 공로를 인정받았는지 성역소(城役所)가 파한 뒤 설치된 의궤청에서도 계속 일했다. 1800년 정조의 산릉(山陵) 조성과 1804년 인정전(仁政殿) 영건(營建)에 참여했으며, 두 의궤에 모두 훈국화사(訓局畵師)와 방외화사(方外畵師)로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도화서 화원은 아닌 듯하며, 훈련도감 소속의 방외화사였던 듯하다. 의궤에서 보듯이 주로 성곽 축조, 산릉 조성, 궁궐 이건 등 건축과 관련된 곳에서 활동했다.
현전하는 엄치욱의 작품들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백악산을 그린 작품은 정선(鄭敾)의 영향이 두드러지고, 묘길상(妙吉祥), 구룡폭포, 죽서루를 그린 장면들은 김홍도(金弘道) 화풍이 여실히 드러난다. 백악을 보다 넓은 시점에서 조망하거나 죽서루를 포착하는 시점을 달리하는 등 부분적으로 변화를 주었다. 조선 후기에 크게 풍미한 진경산수화의 여맥을 이었으나, 전대의 화풍을 답습하는 데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