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죽서루

  • 예술·체육
  • 유적
  • 조선 전기
  • 국가문화유산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에 있는 조선전기 삼척부사 김효손이 중창한 누정. 누각 · 조경건축물.
이칭
  • 이칭죽서루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주남철 (고려대학교, 건축사)
  • 최종수정 2025년 03월 12일
삼척 죽서루 미디어 정보

삼척 죽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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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에 있는 조선전기 삼척부사 김효손이 중창한 누정. 누각 · 조경건축물.

내용

정면 7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삼척시의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데,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가 창건하였고, 1403년(태종 3) 삼척부사 김효손(金孝孫)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2023년 12월 국보로 승격되었다.

이 누각에는 이이(李珥)를 비롯한 여러 명사들의 시가 붙여져 있는데, ‘關東第一樓(관동제일루)’라는 대액(大額)은 숙종 때의 부사 이성조(李聖肇)가 건 것이다.

현재의 크기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지만, 본래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좌우 각 1칸에 놓인 공포(栱包)의 모습이 다르고, 또 내부 천장에 당초 측면 밖으로 나와 있던 도리의 뺄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는 기둥 윗몸에서 소첨차(小檐遮)를 보의 방향으로 놓고, 이 위에 대접받침을 놓아 초제공에 놓은 첨차를 받치고, 이 첨차는 외이출목도리(外二出目道里)의 장여를 받치고 있는 주심포식(柱心包式)의 건축이지만, 각 부재들은 오히려 다포식의 모습을 더 많이 지니고 있다.

가구(架構)는 7량(七樑)으로 앞뒤 평주(平柱) 위에 대들보를 걸고, 이 위에 첨차와 소로[小累]로 싸여진 포작식(包作式)의 동자기둥을 세워 종량(宗樑)을 받치고, 이 종량 위에 초각된 판형(板形)과 대공(臺工)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특히, 이 누각에서 주목되는 것은 기단(基壇)과 초석이 없이 두리기둥 밑면을 그렝이질하여 자연암반 위에 직접 세운 것이다. 누각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연등천장[椽背天障]이며, 우물마루바닥 밖으로는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두르고, 기둥 사이는 벽체나 창호 없이 모두 개방하였다.

참고문헌

  • - 『공도삼척전모(工都三陟全貌)』(金永起, 江原日報社, 1948)

  • - 『한국건축양식론』(정인국, 일지사, 1980)

  • - 『문화재대관-보물편-』(문화재관리국,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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