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서묵재(瑞墨齋)이다. 1745년에 태어났다. 중인 가문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 박세량(朴世亮)과 아우 박세장(朴世章)이 역관으로 봉사하였다.
도화서에 들어간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정조와 순조 연간에 궁중 행사를 위한 화업에 동원되었다. 1790년에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삽도 제작에 참여하였고, 1800년에는 정조의 산릉도감(山陵都監)에 소속되어 석각 제작을 감독하였다. 1802년에는 가례도감(嘉禮都監)의 기물과 병풍을 담당한 공방에 소속되었으며, 1804년의 창덕궁 인정전 영건에도 참여하였다. 1804년 이후 1807년까지 자비대령화원 녹취재에 응시하다가 1808년에 교체되었다.
박유성은 순조 대에 자비대령화원으로 활동하면서 동갑인 이인문(李寅文), 김홍도(金弘道)와 절친하게 지냈다. 이들은 박유성의 집에 모여 그림을 그리며 어울렸는데, 그 집의 당호가 서묵재이다. 김홍도의 「지장기마도(知章騎馬圖)」, 이인문의 「송하담소도(松下談笑圖)」가 서묵재에서 그려진 작품들이다. 사적인 그림에서 절친했던 김홍도로부터 영향을 받은 듯하다. 1816년에 그린 「서금도(棲禽圖)」가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