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성 ()

회화
인물
조선 후기, 「서금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
이칭
서묵재(瑞墨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45년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밀양(密陽)
주요 작품
서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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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박유성은 조선 후기에 「서금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증조할아버지와 아우가 역관을 지낸 중인 가문 출신이다. 정조가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도해를 맡았으며, 정조 국장에는 산릉도감에 속하여 석각을 담당하였다. 같은 시대에 활동한 이인문, 김홍도와 교유하였다. 1816년에 그린 「서금도」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정의
조선 후기, 「서금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서묵재(瑞墨齋)이다. 1745년에 태어났다. 중인 가문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 박세량(朴世亮)과 아우 박세장(朴世章)이 역관으로 봉사하였다.

주요 활동

도화서에 들어간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정조와 순조 연간에 궁중 행사를 위한 화업에 동원되었다. 1790년에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삽도 제작에 참여하였고, 1800년에는 정조의 산릉도감(山陵都監)에 소속되어 석각 제작을 감독하였다. 1802년에는 가례도감(嘉禮都監)의 기물과 병풍을 담당한 공방에 소속되었으며, 1804년의 창덕궁 인정전 영건에도 참여하였다. 1804년 이후 1807년까지 자비대령화원 녹취재에 응시하다가 1808년에 교체되었다.

박유성은 순조 대에 자비대령화원으로 활동하면서 동갑인 이인문(李寅文), 김홍도(金弘道)와 절친하게 지냈다. 이들은 박유성의 집에 모여 그림을 그리며 어울렸는데, 그 집의 당호가 서묵재이다. 김홍도의 「지장기마도(知章騎馬圖)」, 이인문의 「송하담소도(松下談笑圖)」가 서묵재에서 그려진 작품들이다. 사적인 그림에서 절친했던 김홍도로부터 영향을 받은 듯하다. 1816년에 그린 「서금도(棲禽圖)」가 대표작이다.

참고문헌

원전

『화사양가보록(畵寫兩家譜錄)』

단행본

『한국역대서화가사전 상』(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강관식, 『조선 후기 궁중화원 연구 상: 규장각의 자비대령화원을 중심으로』(돌베개, 2001)

논문

김소영,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 연구」(명지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5)
홍선표, 「김홍도 생애의 재구성」(『미술사논단』 34, 한국미술연구소, 2012)
홍선표, 「한국(韓國)의 영모화(翎毛畵)」(『국보: 10 회화 』, 예경산업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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