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는 일찍이 화장품이나 그림의 안료, 연금술 등에서 중요한 성분으로 쓰인 황화수은이다. 광석으로 채굴되기도 한다. 옅은 붉은색에서부터 진한 빨간색까지 있어 동서양에서 일찍부터 화장품으로 쓰였다. 서기전 12세기 중국 은나라 때부터는 그림의 안료로도 쓰였다. 수은과 더불어 서기 전부터 동양에서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연단술의 성분으로 쓰였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붉은 색소의 은주가 일찍부터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1834년에 이규경은 『오주서종박물고변』에서 은주를 만드는 방법을 다루고 있어 당시에 은주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광석으로 채굴되기도 한다. 이 수은화합물은 아주 옛날부터 이름과 용도가 다양하여 중국과 우리 나라에서는 영사(靈砂) · 기사(氣砂) · 심홍(心紅) · 이기사(二氣砂) · 이기단(二氣丹) 등으로 불렸다. 이규경(李圭景)은 그의 저서 『 오주서종박물고변(五洲書種博物考辨)』에서 성홍(猩紅)과 자분상(紫粉霜)이라고도 부른다고 하였다.
위의 여러 이름들이 보여주듯이 은주는 옅은 붉은색에서부터 진한 빨간색까지 있기 때문에 동서양에서 아주 일찍부터 화장품으로 쓰였으며, 서기전 12세기 중국 은(殷)나라 때부터는 그림의 안료(顔料)로도 쓰였고, 서기전 1세기에는 영국산 은주가 인도에 소개되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붉은 색소의 은주가 일찍부터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은주는 수은과 더불어 서기 전부터 동양에서는 주로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연단술(鍊丹術)에서, 그리고 서양에서는 대체로 저속 금속을 금 · 은과 같은 귀한 금속으로 만들려고 하던 연금술(鍊金術)에서 중요한 성분으로 쓰였다.
연금술사들은 수은으로부터 황화수은을 만들고 정제하여 단의 비약(祕藥)으로 먹고 또 금을 잘 달구어 연숙(鍊熟)하여 먹음으로써 금의 불멸성을 인체에 부여받으려고 노력하였는데, 그들의 방법은 중국의 도사(道士) 갈홍(葛洪, 283∼343)의 저서 『포박자(抱朴子)』와 도홍경(陶弘景)의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 그리고 730년에 편집되고 그 뒤 여러 번 편찬된 『도장(道藏)』 등에 잘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로 발견된 평안남도 강서군의 「삼산도형(三山圖形)」과 「신선도상(神仙圖像)」, 그리고 선녀가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오른손으로 영지(靈芝)를 채취하는 「선녀채지도(仙女採芝圖)」들은 우리 나라에서도 일찍 발전하였던 도교(道敎)의 신선사상(神仙思想)과 불로장생사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포박자』와 『본초경집주』는 삼국시대에 이미 수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방법들이 일찍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나, 1834년에 나온 『오주서종박물고변』에만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규경이 다룬 여러 방법 중에서 가장 자세하게 기록된 것은 1637년에 명나라의 송응성(宋應星)이 지은 『천공개물(天工開物)』과 원(元) · 명(明)초에 호연(胡演)이 쓴 『단약비결(丹藥祕訣)』에서 인용된 방법들이다.
이 두 가지는 거의 같아서 수은 1근마다 석정지(石亭脂 : 붉은 유황) 2근을 같이 갈아 뚜껑이 넓은 진흙그릇[泥罐]이나 새 가마솥[新鍋] 안에 넣고 태워서 만드는 것이다.
가마솥은 철잔(鐵盞)이나 돌판[石版]을 뚜껑으로 덮고 그 위에 철막대[鐵尺]를 눌러놓고 철선으로 밑에까지 전체를 꼭꼭 동여매어 소금진흙[鹽泥]으로 입구의 닿는 곳을 고정시킨다. 솥 밑에서 센 불로 달구는데 헌붓을 물에 적시어 뚜껑을 적셔주면 은주가 스스로 이루어져서 가루가 되어 솥 위에 붙는데 입구에 붙은 것이 붉기가 제일 아름답다.
식으면 들어내어 쓸어내려서 쓰며 석정지는 솥 밑에 내려가므로 다시 쓸 수 있다. 수은 한 근에 제일 좋은 주(硃) 14냥을 얻을 수 있으며 다음으로 좋은 주 3냥5전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수은과 유황을 승화(昇華)시켜서 은주를 만드는 방법은 현재까지도 영어와 독일어의 기술서에서는 ‘중국식 방법(Chinese method)’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규경은 수은과 유황에 백연(白鉛) · 소금 · 백반(白礬) 등의 물질을 첨가하여 은주를 만드는 방법과 유화수은인 은주를 다시 수은으로 만드는 방법도 다루어 당시에 은주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위와 같이 수은과 유황을 달여 만든 은주(銀硃)와 좋은 품질의 광석을 갈아 만든 은주는 성질은 비슷하나 왕실과 귀족들이 그림을 그릴 때는 갈아 만든 은주를 사용하였다.
문방(文房)에서는 아교를 섞어 조각을 만들어서 돌벼루에 갈아 썼다고 한 것으로 보아 검은 잉크가 발견되어 사용되기 전까지 붉은 잉크가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인가(印家)에서는 은주로 인주를 만들었다 하니 얼마나 긴요하게 쓰였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