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초(焰硝) 달이는 방법을 성공적으로 연구하고 실험한 사람이다. 화약의 주원료인 염초를 만드는 기술이 제대로 발달되지 못하여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화약을 중국에서 사들여 왔으므로, 그 공급량이 충분하거나 일정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중국 조정이 때때로 화약의 수출을 엄하게 금지하고, 염초 달이는 방법을 비밀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국방에 꼭 필요한 화약이 항시 부족한 것을 걱정하던 성근은, 포로들이나 다른 중국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연구하여 무고(武庫)에서 실험한 결과 힘은 전보다 쉽고도 100배나 성능이 좋은 화약제조 방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성근에 관해서는 문헌에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1698년(숙종 24)에 간행된 역관 김지남(金指南)의 『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에 실려 있는 간기에서 성근이 관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염초 달이는 방법은 1635년(인조 13)에 원풍부원군(元豊府院君) 이서(李曙)가 채택하여 공조에 명하여 실험하게 하고 15절(節)로 나누어 『신전자취염초방언해(新傳煮取焰硝方諺解)』를 편찬하여 국문으로 번역, 간행하였다. 훈국(訓局)의 무고를 관장하면서 이서가 편찬한 화포(火砲) 만드는 방법과 성능에 대한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와 같이 합책되어 간행되었으며, 1685년(숙종 11)에 중간되었다.
성근의 이러한 방법은 조선시대의 화약제조 기술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60여년 후에 개발된 김지남의 자초(煮硝)방법도 성근의 방법과 비슷하다. 『신전자취염초방』에 서술된 성근의 자초법과 『신전자초방』에 서술된 김지남의 자초법은 현재까지 문헌에 내려오고 있는 유일한 전통적 화약제조법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