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초도회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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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염초(焰硝)를 달여 얻기 위해 1450년(문종 즉위년)에 각 지방에 설치했던 임시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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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화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염초(焰硝)를 달여 얻기 위해 1450년(문종 즉위년)에 각 지방에 설치했던 임시관청.
내용

문종은 세자로 있을 때부터 화기의 개량과 발전, 병제의 개혁과 일반 과학기술의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화약의 필요성과 그것을 제조하기 위한 염초자취법(焰硝煮取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문종은 즉위년 9월에 여러 읍을 단위로 하여 경기도 6개, 강원도 4개, 충청도 3개, 전라도 4개, 경상도 4개, 황해도 4개 등 모두 25개의 도회소를 평안도와 함길도의 두 변방지역을 제외한 전국에 설치하였다. 나라의 인가를 받은 사람만이 이 도회소에서 염초를 제조하여 전량을 국가에 바치게 함으로써 그 비밀이 왜구에게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였다.

조선 초에 염초를 제조하던 방법은 현재 정확하게 알 수 없다. 14세기 말에 최무선(崔茂宣)과 그의 아들 해산(海山)이 화약제조법을 연구하여 ≪화약수련법 火藥修鍊法≫과 ≪총통등록 銃筒謄錄≫을 썼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근(成根)의 염초자취법을 서술한, 1635년(인조 13)에 간행된 ≪신전자취염초방언해 新傳煮取焰硝方諺解≫와 1698년(숙종 24)에 간행된 김지남(金指南)의 ≪신전자초방 新傳煮硝方≫에 나타난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염초를 얻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적당한 종류의 흙을 채취하여 재[灰], 사람의 소변, 말똥 등을 섞어 큰 나무통[木槽]에 펼쳐 놓고 물을 부어 필요한 성분이 걸러 나오도록 한다. 이 물을 가마에 달여 식히면 모초(毛硝)가 응결되어 가라앉게 되는데, 이 모초를 녹여 다시 달여 한두 번 정제시킨 뒤 재와 유황에 섞어서 화약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문종이 내린 도회소의 자취 업무에 대한 규정을 보면, 염초에 필요한 흙[焰硝土]은 공해(公廨)·사사(寺社)·원관(院館) 등에서만 모으고, 민가에서는 하지 못하며, 대부(大釜)·대조(大槽)·대통(大通)·표사(瓢篩) 등 자취에 필요한 기구와 소목(燒木)은 반드시 도회소에서 준비하여 백성을 괴롭히지 않도록 하였다.

또한 수상(受賞)을 목적으로 1년 내내 그치지 않고 자취, 과잉 생산하여 백성을 괴롭히는 일을 막기 위해 각 도의 도회소 중 한 곳에서만 차례로 자취하는데, 매년 봄(1월 15일∼3월 말)과 가을(8월 15일∼10월 말)에만 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과잉 생산을 막기 위해 1451년(문종 1)에는 각 도에서 생산할 염초의 양을 미리 정했으며, 이듬해에는 각 관청에 근량(斤兩)을 정하여 상공(常貢)으로 상납하도록 결정하였다. 이와 같이 각관납공(各官納貢)이 가능할 만큼 염초자취기술이 당시에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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