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경기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중층 팔작지붕건물이다. 원래 여주 군청의 정문이었으나 1925년 군수 신현태(申鉉泰)가 파손될 것을 염려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축하였다.
영월루 입구에는 비석거리가 있고 그 윗쪽에는 1958년에 이건된 여주 창리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과 여주 하리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이 있다. 상층 누마루에 올라보면 한강 상류 쪽으로 강물 건너편에 신륵사가 보이며 하류 쪽으로는 멀리 흥천면 마을이 보여 전망이 좋다.
누각의 바로 아래 북쪽 강안은 절벽이 깎아 세운 듯하고 기암괴석이 중첩되어 절경을 이루며, 이 절벽이 끝난 곳에서 약간 떨어진 지점에 큰 암석이 있는데, 이 암석이 여흥민씨(驪興閔氏)의 시조가 탄생하였다는 마암(馬巖)이다. 여기에는 ‘마암(馬巖)’이라는 글씨가 있으며, 이색(李穡)도 이곳에서 청풍명월을 즐기며 많은 글을 남겼다고 한다.
2층 누각의 이 건물은 정면 길이에 비하여 측면 길이가 짧으므로 평면은 긴 장방형이다. 장대석 기단에 놓인 높은 사각 초석 위에 짧은 하층 기둥이 세워져 누마루가 꾸며지고 그 위에 상층 기둥이 세워져 이익공과 결구되고 오량(五樑)의 지붕 가구를 짜 올렸다. 창방(昌枋: 기둥 머리에 기둥을 연결하고 평방 또는 화반, 소로 등을 받는 가로 부재)이 굵은 부재로 보강된 것은 문루의 가구법과 유사하다. 상층의 누마루 사방에는 계자각(鷄子脚: 누마루나 대청의 난간 중간에 풀무늬를 새겨 세운 가느다란 기둥)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익공의 형태나 가구 수법으로 미루어 18세기 말의 건물로 추정되는데 낮은 기단과 기다란 몸체, 치켜 들려진 지붕의 비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