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초창(初創)된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45년(인조 23)에 중건하였다. 금강계단은 초층 너비 약 9.9m, 총 높이 약 3m이다.
대웅전은 다른 전각과는 달리 정면의 너비가 측면보다 좁은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이 전각 내에 부처를 모시지 않았기 때문에 전각 정면이 건물 후면에 있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金剛戒壇)을 향하여 있고, 또한 불이문(不二門)을 들어섰을 때 마주보이는 측면에도 합각(合閣)을 만들어 양쪽을 다 강조한 특이한 구성 때문이다. 그 결과 건물의 삼면에는 방향에 따라 대웅전, 금강계단, 적멸보궁 등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 있다.
지대석(地臺石)을 놓고,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를 세우고 이 사이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 면석(面石)을 끼우고, 상부에 상대갑석(上臺甲石)을 놓아 마무리한 가구식(架構式) 기단(基壇)을 이루는데, 이는 이 대웅전의 초창 때인 신라시대의 것이라 생각된다.
기단 위에 놓은 초석 또한 일부는 주좌(柱座)를 쇠시리(나무의 모난 면을 모양지게 깎아 만든 것)한 고격(古格)의 것이고, 일부는 막돌초석이며, 이 위에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 윗몸은 창방(昌枋)으로 결구하고 이 위에 평방(平枋)을 놓아 공포(栱包)를 기둥 위에는 물론, 기둥 사이 평방 위에도 놓은 다포식(多包式)을 이루고 있다.
공포의 짜임은 외삼출목(外三出目) · 내사출목(內四出目)으로서 초제공(初諸貢)이나, 2제공 위에 놓인 살미첨차[山彌檐遮]의 끝은 강직한 앙서[仰舌]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서는 교두형(翹頭形)으로 되어 건실한 짜임을 이루고 있다.
가구(架構)는 내부의 서측 내진(內陣)에 고주(高柱)들을 세워, 이들 고주와 동측면의 평주 사이에 대들보[大樑]를 걸고, 이 위에 동자 기둥을 세워 중종보[中宗樑]와 종보[宗樑]를 걸었다.
그러나 전면부터 제4주열에는 2개의 고주를 세워 고주 사이에 대들보를 걸었고, 또 제5주열에는 양측 모두 고주를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후면 어간(御間) 기둥과 제4주열 고주간에 충량(衝樑)을 걸었다.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층단천장을 이루면서 우물천장으로 마무리하였다. 불이문쪽과 금강계단을 향하여 이중으로 정면성을 주기 위하여 합각을 양측면 전면 세 곳에 마련하였음이 이채롭다.
금강계단은 이중의 넓은 방단(方壇) 위에 석종(石鐘)의 부도를 안치하였다. 석단 네 귀퉁이에는 사천왕상을, 기단 상하 면석에는 비천상과 불보살상을 배치하였다.
석단 외곽에는 석조 난간을 돌렸고, 계단 정면에는 석문(石門)을 두었으며, 계단의 층면석에는 총 32구의 불보살상을 나타냈다. 계단의 상층 중심부에 위치한 석종부도는 복련과 앙련의 상하 연화대 위에 위치하며, 그 조각수법이 다른 조각들과는 달리 매우 우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