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多包式)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혜사는 신라 경덕왕 때 보조국사(普照國師)가 건립하였다는 설과 중국 당(唐)나라 천봉(天奉) 원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당나라에는 천봉이란 연호는 없고 천보(天寶)라는 연호의 원년(742)이 경덕왕 원년에 해당하므로 이때가 초창(初創)임이 분명하다. 그 때문인지 이 사찰을 오래된 절이라는 뜻에서 고사(古寺)라 불러왔다.
대웅전은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워 공포를 얹었다. 공포는 외3출목·내4출목으로 살미첨차[山彌檐遮]는 강직한 앙서[仰舌]로 되어 있고, 안에서는 교두형(翹頭形)으로 되어 있어 조선 전기의 면모를 보여준다. 가구(架構)는 무고주5량가(無高柱五樑架)로서 충량(衝樑)이 대량(大樑) 위에 걸쳐 있다.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빗천장과 우물천장으로 되어 있다. 개구부(開口部)는 정면 3칸, 측면 앞툇간에 빗살 2분합문(二分閤門)을 달았으며, 벽체는 판장벽(板帳壁)으로 되어 있다. 처마는 부연을 단 겹처마로서 네 추녀 끝은 활주로서 떠받치고 있다. 대웅전 안의 불단(佛壇)은 예스러운 품격을 지니고 있고, 판벽으로 처리한 점, 강직한 쇠서의 공포뿐만 아니라 바깥쪽 건물의 세부 처리 기법 역시 조선 전기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기 위해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천장으로 꾸몄으며 건물에 입힌 단청이 퇴색되었지만 조선 전기의 문양과 색채를 간직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 가지는 격이 살아 있고 조선 전기 목조 건축의 여러 양식을 찾아 볼 수 있어 중요한 건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