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실세하여 직곡산장(直谷山莊)으로 은퇴하자 1875년(고종 12) 6월 영남유생으로서 경기도유생 조충식(趙忠植), 전주유생 조병만(曺秉萬) 등과 함께 흥선대원군을 고종이 직접 가서 모셔와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로 인하여 서소문(西小門) 밖에서 참형(斬刑)을 당하게 되었으나 당시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김병학(金炳學)과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홍순목(洪淳穆), 박규수(朴珪壽) 등이 연차상소(聯箚上疏)하여 참형중지를 거듭 주장하였다. 그 결과 나주목 지도(智島)에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