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량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시대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이칭
  • 경명(景明)
  • 시호무숙(武肅)
  • 일옹(逸翁)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정유재란
  • 본관수성(隋城)
  • 사망 연도1651년(효종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흥양현감
  • 출생 연도1560년(명종 1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태진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일옹문집 미디어 정보

일옹문집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개설

본관은 수성(隋城). 자는 경명(景明), 호는 일옹(逸翁). 조부는 영릉참봉(英陵參奉) 최영(崔瀛), 부친은 승지(承旨) 최낙궁(崔樂窮) 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큰 체구에 용모가 뛰어나고 독서를 좋아하였으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무예를 익혔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상중(喪中)에 있었기 때문에 나아가 싸우지 못하였고, 1594년 무과에 급제한 다음, 당시 충청수사로 있던 장인 이계정(李繼鄭)을 돕도록 천거되어 선전관에 임명되었다.

정유재란 때에는 흥양현감(興陽縣監)으로 있으면서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서 여러 번 전공을 세워 이순신의 격찬을 받았으나,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이순신이 전사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왔다.

1604년 논공에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병자호란 때에는 이미 나이가 많아서 출전하지 못하고 대신 아들을 보내어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하게 하였다.

저서로는 『일옹문집』 2권 1책이 있다. 1774년(영조 50)에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1800년(정조 24) 나주 향인들이 지은 사당에 이순신과 함께 배향되었다. 시호는 무숙(武肅)이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경산집(經山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