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제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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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충주목사 조병로가 중건한 관청.
제도/관청
  • 설치 시기1870년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인제 (충청북도)
  • 최종수정 2026년 04월 22일
충주 제금당 미디어 정보

충주 제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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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충주목사 조병로가 중건한 관청.

내용

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1870년(고종 7) 8월에 청녕헌(淸寧軒)과 함께 소실되어 같은해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가 중건하여 관아로 사용하였던 건물이다.

이 건물의 중앙에는 ‘製錦堂’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고, 대문에는 ‘蘂城別館(예성별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구조는 가공이 된 장대석을 2단으로 축조한 기단상에 방형주초석을 놓고 원형주를 세워 이익공(二翼工) 양식의 공포(栱包)를 구성하였는데, 앙서형상(仰舌形狀)으로 돌출된 익공의 선단에 연봉(蓮峰)이 장식되었고, 내부로는 초각(草刻)을 한 보아지[梁奉]가 돌출되어 퇴량을 받쳐주고 있어 청녕헌과 유사한 공포의 구성수법을 볼 수 있다.

또한, 창방(昌枋)으로 결구된 주간에는 좌단간을 제외한 각 간에 1구(具)씩의 화반형(花盤形)의 초각반을 배치하여 주심도리(柱心道里) 장혀[長舌]를 받쳐주고 있다.

가구(架構)는 전후 평주 사이에 양내고주(兩內高柱)를 세워 대량과 퇴량을 결구하였는데, 대량 상부에 종량을 가구하지 않고 직접 대량 상부 중앙에 동자주형(童子柱形)의 대공(臺工)을 설치하여 종도리(宗道里)를 받치고 있는 특이한 가구방식으로 굴도리[圓道里] 5량집이다.

이 제금당은 중앙 2칸 통간을 우물마루의 대청으로 하여 이용하였으며, 대청 우측 2칸은 온돌방과 마루방으로, 대청 좌측 3칸은 2칸의 온돌방과 1칸의 마루방으로 각각 만들었는데 전면에는 모두 반칸씩의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참고문헌

  • - 『문화재지』(충청북도, 1982)

  • - 『충주·중원지』(충주시·중원군,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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