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충주목사 조병로가 중건한 관청.
내용
중앙 3칸은 우물마루를 깔아 넓은 대청으로 하였으며, 우단 1칸은 대청보다 조금 높여 전후면에 툇마루를 둔 마루방으로, 대청 좌측 2칸은 전후면에 툇마루를 둔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좌단 1칸에는 온돌방 아궁이를 만들기 위하여 하부는 함실로, 상부는 누마루를 만들었다.
구조는 가공된 장대석으로 2단 축조한 기단상에 원형주좌(圓形柱座)를 조출(彫出)한 8각주초석을 원형주로 세워 이익공(二翼工) 계통의 공포(栱包)를 구성하였는데, 앙서[仰舌]형상으로 돌출된 익공의 선단에 연봉(蓮峰)이 장식적으로 조각되어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내부로는 초각(草刻 : 당초무늬를 새긴 것)을 한 보아지(규모가 작은 집의 들보 구실을 하는 것)가 퇴량(退樑)을 받치고 있다.
또한 창방(昌枋)으로 결구된 주간에는 초각이 없는 화각반(花刻盤)을 각 칸에 1구(具)씩 배치하여 주심도리(柱心道里) 장혀[長舌]를 받치고 있다. 가구(架構)는 전후 평주 사이에 양내고주(兩內高柱)를 세워 대량과 퇴량을 결구하고 있는데 대량 상부에 낮은 동자주(童子柱 : 세로로 세운 짧은 기둥)를 놓고 종량(宗樑)을 받쳐주고 있다.
종량 상부 중앙 부분에는 제형대공(梯形臺工)을 설치하여 종도리와 뜬창방의 이중도리와 함께 옥개부분의 하중을 받치도록 되어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7량집으로 ‘淸寧軒’ 3자의 현판이 붙어 있다. 1983년에 해체, 보수하였다.
참고문헌
- 『문화재지』(충청북도, 1982)
- 『충주·중원지』(충주시·중원군,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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