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서(梁書)』신라전에는 6세기 전반경 신라의 행정구역을 설명하여, “내읍(內邑)을 탁평이라 하는데 여섯 탁평이 있고, 외읍(外邑)을 읍륵(邑勒)이라 하는데 52읍륵이 있다.”라고 하였다.
『구당서(舊唐書)』·『신당서(新唐書)』·『통전(通典)』에는 탁(啄)을 탁(㖨)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탁은 신라 왕경을 구성하고 있는 6부(部) 중 탁부(啄部)·사탁부(沙啄部)의 탁(啄)과 동음(同音)이고, 더욱이 그 숫자가 여섯인 데에서 6탁평을 6부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최근 경상북도 울진군봉평(鳳坪)에서 발견된 신라비는 524년(법흥왕 11)에 만든 것인데, 여기에는 ‘신라육부(新羅六部)’라는 명문이 보이고 있어 『양서(梁書)』 신라전의 6탁평이 왕경 6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하여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6탁평을 왕경 주변에 배치한 군부대, 즉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보이는 6기정(畿停)으로 해석하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