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전 24년(동명왕 14) 부여에서 유화가 죽자 부여왕 금와(金蛙)가 장례를 태후의 예식으로 행하고 건립하였다고 하는데, 이 경우는 신주를 모신 사당이라기보다는 유화의 무덤 자체를 가리키는 것 같다.
기록상으로는 121년(태조왕 69) 태조왕이 직접 부여로 가서 제사하였다는 사실만이 전해지고 있고, 또 이것은 그 해 후한(後漢)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을 보고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따라서, 이곳은 비록 다른 기록은 없지만, 고구려 역대 왕들이 특별한 경우 직접 제사를 주관하던 시조신앙의 성지의 하나였다고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