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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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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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9년(예종 1)한성부(漢城府)의 직제개정으로 설치된 한성부의 정2품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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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469년(예종 1)한성부(漢城府)의 직제개정으로 설치된 한성부의 정2품 관직.
내용

한성부의 최고위 관직으로, 정원은 1인이다. 1394년(태조 3) 11월 26일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수도의 명칭을 한양부(漢陽府)라 하였으며, 한양부를 관할하는 총책임자를 판한양부사(判漢陽府事)라 하였다.

1395년 6월 6일 한양부를 한성부라 개칭하고 판한양부사를 판한성부사로 개칭하였다. 1469년 한성부의 관제를 개혁하여 판한성부사를 판윤으로 개칭하고 초대판윤에 서거정(徐居正)을 임명하였다. 판윤 밑에 종2품관인 좌윤(左尹)·우윤(右尹)을 두고 종4품관인 서윤(庶尹)을 두었다.

1894년(고종 31) 8월 13일 관제개혁에 따라서, 판윤을 부윤(府尹)이라 하였고, 1895년 5월 26일에는 지방제도를 개혁하여 전국 8도제도(八道制度)를 23부(府) 337군(郡)으로 개정할 때 한성부를 한성군(漢城郡)으로 격하하여 수도를 관할하는 관부(官府)가 일개의 군과 같이 되었다.

따라서 한성부는 경기관찰사가 관할하는 11개 군 중의 하나인 한성군으로 되었고 이의 책임관은 참사관(參事官)이었다. 1896년 8월 4일 다시 전국의 지방제도를 개정할 때 한성군을 한성부로 격상하였고 총책임자를 다시 판윤으로 하였다.

1905년 일제의 침략으로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고 모든 관제가 개정됨에 따라서 한성부의 책임자를 윤이라 하였으며, 그 품계를 칙임관(勅任官)이라 하였다.

1907년에는 윤(尹)을 다시 부윤이라 하였고, 1910년 일제의 조선침략으로 조선왕조가 멸망함에 따라서 수도 한성부의 명칭도 없어졌고 한성부의 총책임관이었던 한성부 부윤의 명칭도 없어졌다.

참고문헌

『태조실록(太祖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대전회통(大典會通)』
『구한국관보(舊韓國官報)』
「한성부(漢城府) 연구(硏究)」Ⅰ(원영환, 『향토서울』39,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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